무너진 원전생태계 살린다..올 925억 일감 발주 '긴급 수혈'

세종=양철민 기자 2022. 6. 2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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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절벽에 "오늘 버티기도 힘들어"
원전부품사 3800억 유동성 지원
2025년까지 1조 일감 추가 발주
R&D 역량 강화에도 3.67조 투입
원전수출전략추진단 7월 발족
고준위방폐물 융합대학원 신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남 창원시의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찾아 회사 관계자로부터 한국형 원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정부가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으로 황폐화된 원전 생태계 복구 작업에 본격 나선다. 정부는 원전 협력 업체들에 925억 원 규모의 일감을 긴급 공급하고 2025년까지 1조 원 이상의 일감을 추가 발주할 계획이다. 원전 연구개발(R&D)에는 2025년까지 4조 원에 가까운 자금을 쏟아붓고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관련 인재 확충에도 팔을 걷어붙인다.

정부는 긴급 자금 지원 등을 통해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원전 부품 업체 사이에서는 “당장 이자 상환액 조달도 버거운 상황에서 올해를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한숨이 여전하다. 탈원전 정책으로 망가진 원전 생태계 복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22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원전산업 협력 업체 간담회’를 개최하며 원전 산업 협력 업체 지원 대책 및 원전 중소기업 지원 방안을 공개했다.

정부의 이날 대책은 수주 절벽에 신음 중인 원전 업계를 대상으로 한 일감 및 자금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는 원전 예비품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설계 등을 위해 925억 원 규모의 일감을 원전 협력 업체에 긴급 공급하기로 했다. 또 내년부터 3년여 동안 1조 원 이상의 일감을 추가 공급한다.

원전 부품 업체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3800억 원의 긴급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도 눈에 띈다. 여기에는 당장 기업들이 수주 보릿고개를 넘어서지 못해 도산하면 원전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R&D 역량을 높이기 위한 지원도 나왔다. 정부는 올해에만 R&D로 6700억 원을, 내년부터 2025년까지는 3조 원 이상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핵심 기자재 국산화 개발 및 중소 협력 업체의 수출 지원을 하기 위한 해외 수요 연계형 R&D 투자도 늘리며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상용화에도 2028년까지 3992억 원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원전 대기업도 상생 경영을 통해 정부 정책에 호응하기로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은 ‘원전 협력사 5대 상생 방안’을 발표했다. 협력사들에 △일감 지원 △금융 지원 △기술 경쟁력 강화 지원 △미래 먹거리 지원 △해외 진출 지원 등에 나서겠다는 게 골자다.

문제는 이 같은 긴급 일감 발주 규모가 ‘탈원전’으로 감소한 원전 업계 전체 매출의 15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 시행 전인 2016년 국내 기업의 원전 관련 매출은 5조 5034억 원에 달했지만 2020년에는 4조 573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한 원전 부품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긴급 발주한다는 925억 원 규모의 일감을 어느 업체가 수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차입금을 통해 고정비를 메우는 상황이 연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원전 업체들 사이에서 향후 전망이 나아졌다는 말이 나오지만 실제 선수금을 받기 전까지 보릿고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도 조속히 자금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 더 이상의 기간 단축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원전 수출 확대를 통한 원전 생태계 복구도 추진한다. 신한울 3·4호기 외에 국내에서는 원전 추가 건설이 힘들다는 점에서 해외 공략을 해법으로 내세운 모습이다. 정부는 체코·폴란드 등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인 국가를 대상으로 수주 공략에 나서는 한편 단순 원전 건설 외에도 노형·기자재·운영·서비스 등 수출 방식을 다각화해 나가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이창양 산업부 장관도 26일부터 엿새간의 일정으로 체코와 폴란드를 방문해 원전 세일즈에 나선다.

원전 수출과 관련해서는 민관 협력 컨트롤타워인 ‘원전수출전략추진단’이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추진단은 한국수력원자력과 같은 공기업, 두산에너빌리티 등 민간기업이 총망라된다. 정부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등으로 쌓은 민관의 노하우를 이번 추진단 설립을 통해 십분 활용할 방침이다. 주요 수출 전략국을 거점 공관으로 지정해 관련 전담관을 투입하는 식으로 ‘전방위’ 수주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특히 고준위방폐물 융합대학원을 서울대에 만드는 방안도 공개했다. 이를 통해 관련 분야의 석·박사 인력을 매년 20명 규모로 양성하기로 했다.

원전 생태계 복구는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만큼 추가 지원책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우리 원전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안정성을 인정받고 있다”며 “예산에 맞게 적기에 시공하는 능력은 전 세계 어느 기업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원전 기업의 경쟁력”이라며 원전 생태계 복구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박호현 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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