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열악한 봉제 노동 환경' 함께 개선을!

한겨레 2022. 6. 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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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20년 전 재킷 한벌에 7천~8천원 하던 봉제노동자 공임이 지금은 겨우 1천~2천원 정도 올랐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영세한 봉제사업주가 노동자들을 4대 보험에 가입시킬 수 있게 독려하고 비용을 일부 보조해주면 좋겠다. 사업장 단가, 임금, 노동환경 개선에도 나서주면 좋겠다.
서울 성북구 인촌로 한 주택가 건물 지하에 있는 봉제공장에서 노동자가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만복 | 봉제노동자

나는 열일곱살에 돈을 벌러 서울로 올라왔다. 누나들을 따라서 봉제공장에 취직한 뒤 지난 36년 동안 봉제 일을 해왔다. 지금은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조그만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 공장에 들어가서 막내 시다(보조원)로 일했다. 조금 숙련된 시다를 거쳐 보조 미싱사가 되고, 오야(팀장) 미싱사가 될 때까지 죽어라 일을 배웠다. 입사해서 받은 첫 월급이 13만5천원인데, 5천원은 오야가 내게 일 잘했다고 얹어준 거였다. 내가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공장에서 만난 아내와 밤낮으로 일하면 둘이서 한달에 500만~600만원을 벌었다. 마냥 이렇게 벌릴 줄 알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지면서 봉제공장에도 예외 없이 일거리가 줄었다. 단가도 내려가 미싱을 해서 먹고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을 그만두고 8개월 택시운전을 했는데 그것도 힘에 부쳐 다시 양복공장으로 돌아왔다.

공장으로 돌아와서 미싱을 그만두고 옷감의 치수를 재고 자르는 재단을 배웠다. 맨날 좁은 자리에 앉아 미싱 발판을 밟는 것보다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칼질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리고 봉제공장에서 마무리 단계에 쓰이는 지그재그 미싱 등 여러 기계들을 익혀나갔다. 이런 노력으로 공장장이 됐다.

그러다 봉제공장에서 옷의 마무리 공정인 시아게(다림질)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1년 정도 배운 뒤에는 작업 성과에 따라 보수를 받는 객공 시아게사로 일했다. 오전 8시에서 밤 10시까지 일을 했다. 일이 많을 때는 자정을 넘기기도 했다. 돈을 버는 재미가 있었지만 온종일 서서 다림질을 하다 보니 다리, 발바닥, 어깨 등이 아파왔다.

시아게를 하면서 내가 공장을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품 팔아 이곳저곳 공장을 알아보러 다녔다. 드디어 신당동에 있는 공장을 운영할 기회가 생겼다. 계약하는 순간 ‘이제 나도 사장이 되는구나!’ 싶어 기뻤다. 포부도 있었다. 완성도 높은 옷을 만들어 홍보도 하고 내가 직접 영업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주문이 들어오면 납품기일 맞추기에 정신이 없었다. 영업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도 알음알음 소개로 온 사람들 덕에 일감이 조금씩 늘어났다.

하지만 성수기인 봄가을에는 일감이 많아도 미싱사들을 구하지 못해 일감을 놓칠 때도 있다. 미싱사들은 일감이 많을 때는 하루 15시간 넘게 일한다. 하지만 비수기에는 미싱 한번 돌리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러면 미싱사들이 다른 곳으로 일감을 찾아 떠난다. 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됐다.

요즘 봉제노동자 평균 나이가 55~60살이다. 수십년을 일한 숙련된 봉제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일하는 환경, 노동시간, 공임 등 처우가 나쁘니 청년들은 봉제 일을 하지 않는다.

30년 전 처음 미싱사가 됐을 때 난 내가 일한 만큼 돈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객공 시아게사로 일할 때는 새벽까지 일해도 벌이가 괜찮아 좋았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공임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중국, 베트남 등에서 싸게 들어오는 옷이 많아 단가 인하 경쟁을 하는 의류업체들 탓에 공임이 낮게 책정되기도 한다. 옷마다 다르지만 한장에 500원짜리도, 2천원짜리도 있다. 20년 전 재킷 한벌에 7천~8천원 하던 공임이 지금은 겨우 1천~2천원 정도 올랐다.

일당 노동자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한다. 미싱은 12만~13만원, 마무리는 17만원, 재단은 20만원 정도를 일당으로 받는다. 일이 많을 때는 400만~500만원도 벌지만 일이 없을 때는 50만원도 못 벌 때가 있다.

지금 영세공장을 운영하는 처지에서 봤을 때, 봉제업의 객공 시스템은 결코 좋은 게 아니다. 객공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기 어렵고 보너스도 퇴직금도 없다. 4대 보험도 가입되지 않는다.

서울 도심 제조업 중 가장 큰 게 봉제산업이다. 신당동에만 봉제공장이 수백~1천개 가까이 된다. 그중 노동자에게 4대 보험을 가입시킬 형편이 되지 않는 영세사업장이 열에 아홉이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서울만 봉제노동자가 9만명이 넘고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사업장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제는 좀 바뀌면 좋겠다. 봉제노동자들의 공정임금, 공정단가 그리고 기본적으로 12시간 이상 일하는 작업시간을 바꿔나가고 싶다. 봉제노동자 주 5일 근무, 4대 보험 등 여러 가지를 바꾸고 싶은데 혼자서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영세한 봉제사업주가 노동자들을 4대 보험에 가입시킬 수 있게 독려하고 비용을 일부 보조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사업장 단가, 임금, 노동환경 개선에 나서주면 좋겠다.

※노회찬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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