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권력 세습' 논란 불 지핀 광주대..아들 이어 손자까지 '3대 총장'
설립자 아들과 며느리, 손자에 재단 이사장·학교장 대물림
광주의 한 사학재단 설립자가 이사장만 '50년'..4곳도 30년 이상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광주의 한 사립대학교에서 3대(代)가 총장직을 이어가는 것을 계기로 광주·전남 사립학교 재단 운영 세습과 족벌체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논란의 불씨를 지핀 곳은 학교법인 호심학원 산하 광주대학교다. 설립자에 이어 아들과 손자가 연이어 총장직을 맡으면서 '3대 총장 세습'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광주대는 지난 14일 오후 5시, 긴급 법인이사회를 열고 최근 별세한 고(故) 김혁종 전 총장 후임에 아들인 김동진(37) 교수를 장례 당일 선임했다. 김 신임 총장은 교수가 된 지 4년 만에 총장직에 올랐다. 부친인 김 전 총장의 발인을 한 지 반나절만이다. 김 교수는 설립자인 고(故) 김인곤 전 이사장의 손자다.
'3대 세습' 논란…직전 총장 발인날 부랴부랴 손자 총장 선임
2003년부터 총장직을 맡아오던 김혁종 전 총장은 지난 10일 자택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광주대는 김 직전 총장의 부친이자 김 신임 총장의 조부인 김인곤 박사가 설립했다. 이를 두고 지역사회 안팎에서 '3대 세습' 논란이 나온다. 아무리 사립학교라고 하지만 30대 교수가 임용 4년 만에 총장으로 임명된 건 설립자의 손자이자 전 총장의 아들이었기 가능했다는 것이다. 현재 김 총장의 조모는 호심학원 상임이사이고 모친은 광주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애초 학교법인 측에선 장례기간 동안 총장 계승자로 설립자의 며느리인 송 아무개 광주대 디자인학부 교수와 손자인 김 교수를 놓고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설립자-아들-며느리-손자로 계승하기보다는 부자(父子) 총장으로 직행하는 길을 택했다. 광주대 안팎에선 '어차피 맞을 매, 한 번에 크게 맞자'는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는 전언이 나온다. 일각에선 김 전 총장 발인식 날 총장 선임이 이뤄진 것을 두고 행여 교수사회에서 총장 직선제 요구가 있을까 봐 부랴부랴 서둘렀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시민단체는 족벌체제 강화라고 규탄했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총장 대물림"이라며 "족별 경영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시민모임은 "고 김혁종 전 총장의 아들이 총장직을 물려받아, 김 전 총장의 어머니 정아무개(호심학원 상임이사)씨 등 가족이 학교 운영에 전방위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족벌 체제를 굳게 다졌다"고 비판했다.
박고형준 시민모임 상임활동가는 "장기 집권하면서 학교를 사유화했던 총장의 아들이 총장직을 대물림하는 것은 전형적인 족벌사학의 모습"이라며 "대학에는 총장이 있어야 하지만, 논란을 예상했다면 추이를 지켜보면서 총장 선임을 천천히 진행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이전 총장이 돌아가셨는데, 신임 총장이 바로 선임되면 전임 총장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비판이 어려워지는 것 역시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학교 발전시킬 적임자" vs "족벌사학 세습 전형"
학교법인 관계자들은 신임 총장 선임을 계기로 예상치 못한 오해와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학교법인 호심학원 측은 김 총장이 설립자의 교육이념과 설립정신을 이어 받아 책임경영으로 학교를 발전시킬 적임자로 판단해 선임했다고 해명했다.
설혜수 법인 사무처장은 21일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노진영 법인 이사장께서 장례기간(5일장) 내내 교무위원 등 내부 구성원은 물론 조문 차 방문한 각계 인사 등에게 두루 자문을 구했다"며 "지방대 위기가 가속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변화하는 사회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젊은 리더가 필요하다는 다수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했다"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설 사무처장은 그러면서 "김 신임 총장은 설립자의 손자이기 이전에 해외 유학과 부총장실 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 재직 등을 통해 부친 곁에서 총장 역량을 충분히 쌓았다"며 "본인도 총장직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 후임 총장을 급히 선임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 정서상 비록 고인에 대한 도리에는 어긋나지만 장례 기간 동안 총장 공백사태로 제 증명 발급 중단 등 업무 장애가 발생해 불가피하게 서둘렀다"고 해명했다.
광주·전남 중등사학 법인 이사장 60% '세습'
사립학교 족벌체제는 비단 이 학교법인뿐만이 아니다. 호남대의 경우 설립자 이사장 사위와 아들이 연달아 총장을 맡고 있으며, 남부대는 설립자 이사장 아들이 총장이다. 동신대와 광주여대는 설립자 이사장 아들과 며느리가 총장을 지냈고, 여러 곳의 전문대도 사정 또한 마찬가지다.
또한 광주·전남지역 상당수 사립학교 법인에서 이사장직 세습이 대(代)를 이어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법인에서는 설립자 본인이 40년 이상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19년 10월 당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경민(서울 영등포을) 의원이 전국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광주·전남지역 사학법인 10곳 중 6곳 꼴로 설립자 본인이 이사장직을 장기 유지하거나 아들이나 손자 등 친인척을 통해 세습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는 29개 법인 중 17개, 전남은 49개 법인 중 29개 법인이 해당된다. 비율로는 광주가 58.6%, 전남이 59.2%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이사장이나 이사, 감사의 임기는 정관으로 정하되, 이사는 5년을 초과할 수 없고, 중임할 수 있으며 감사는 3년을 초과할 수 없고 1회에 한해 중임이 허용된다.
이 같은 규정에 따라 절반 이상의 중등사학 법인에서는 설립자 본인 또는 친인척 세습을 통해 수십년째 사학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이하 2019년 기준) 광주 석산학원(석산고)과 인성학원(인성고), 청송학원(숭덕고), 목포 홍일학원(홍일중고), 순천 효천학원(효천고), 담양 월강학원(창평고), 보성 인명학원(예당중고) 등은 설립자 아들이, 광주 송암학원(진흥중고)과 숭의학원(숭의중, 숭의과학기술고), 목포 문태학원(문태중고) 등은 손자가 대를 이어 운영 중이었다.
또 광주 유은학원(동성여중, 동성중고, 광주여상)은 증손자가, 동강학원(동신중고, 동신여중고)와 순천 청강학원(금당고)은 설립자의 누이남편이, 목포 덕인학원(덕인중고, 혜인여중고)은 사위가, 해남 춘계학원(화원중고)는 설립자의 동생이 이사장직을 맡고 있었다.
장기간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법인도 적잖아 광주에서는 춘광학원(경신중, 경신여고) 등 7곳이 10년 이상 20년 미만, 춘태학원(전남여상, 국제고) 등 2곳이 20년 이상 30년 미만, 고려학원(고려고)과 유당학원(서석중고), 송원학원(송원초·중·고 등) 등 3곳이 30년 이상 이사장직을 이어오고 있다. 이 중 유당학원은 48년째, 송원학원은 41년째 설립자가 이사장 자리를 유지하기도 했다.
전남에서도 10∼19년 11곳, 20∼29년 8곳, 30년 이상 8곳 등 절반 이상이 10년 이상 장기 재직 이사장을 두고 있다. 20년 이상 장기 재직 이사만도 광주가 29명, 전남이 50명에 이르고 있다.
호남지역의 상당수 사학법인들이 이사장의 친인척을 해당 중·고교의 교원이나 직원으로 채용하는 등 사학의 족벌 체제가 고착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김해영 전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8년 사립학교 친인척 직원 채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광주·전남지역 사립학교 법인 33곳에 이사장과 6촌 이내인 부인·자녀·친인척 등 52명이 교원이나 행정직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에는 교장이 2명, 교감 3명, 교사 26명, 5급(행정실장) 6명, 6급 9명, 7급 1명, 8급 4명, 사무운영 9급 등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사장과의 관계는 자녀 또는 배우자, 동생, 손녀, 조카, 조카사위, 며느리, 조카며느리, 사돈 등 다양했다. 교장과 교감, 행정실장 등 고위직은 주로 이사장의 자녀가 차지하고 있다. 사립학교법인 간에 이사장의 자녀와 친인척을 '품앗이' 형식으로 채용하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해 채용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3~4년 전 자료이긴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게 교육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윤영덕 의원, "사학비리의 근본 원인은 족벌경영"
당시 국감에서 민주당 신경민 전 의원은 "설립자 본인 또는 친인척이 운영하는 족벌 사학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법인 이사회 임원들이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갑질의 원인이 되는 폐쇄적인 학교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제한적으로 중임할 수 있는 법률적 제도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사학의 세습·족벌경영을 방지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윤영덕 의원은 "친인척 중심의 대학운영'이 부정 비리의 근본원인이며, 족벌사학이 우리나라 사학의 이미지를 깍아 내리고 있다"면서 "대물림되는 친인척 중심의 운영구조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사학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과 공공성 강화는 요원하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그러면서 "친인척 이사 참여 한계를 현행 전체의 4분의 1에서 공익법인과 같은 5분의 1로 강화하고 이사장을 포함한 모든 임원의 배우자 등이 총장에 임명될 수 없도록 하는 등 법 개정을 통해 친인척 중심의 대학 운영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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