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보다 턱없이 낮은 '영아 살해' 형량..실형 극히 드물어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갓 난 제 혈육을 화장실 변기 물에 낳아 죽이고도 부부는 태연했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1심 재판부의 선고로 부부 손목에 채워졌던 수갑이 풀렸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고도 부부가 교도소에 머무른 기간은 극히 짧았다.
지난 1월 8일 오후 6시 45분께 전북 전주시 덕진구 주택의 화장실에서 태어난 핏덩이는 제대로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산모 A(27)씨가 불법 임신중절 약을 복용해 임신 8개월 차에 조산한 아이였다.
A씨는 출산 고통을 호소하며 변기 물속에 낳은 아이를 방치한 채 남편 B(43)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B씨에게도 아이의 생명은 관심 밖이었다.
그는 집 밖으로 나가 휴대전화로 '아이 탯줄 처리', '아이가 태어나서 울면 병원에서 아나요?' 등을 검색했다.
신고는 한참 늦었다.
119 종합상황실 직원의 지시에 따라 아이를 변기에서 꺼낸 시각은 오후 7시 15분.
30분씩이나 방치된 아이가 살아있을 리 만무했다.
재판부는 부부의 범죄를 질타하면서도 A씨의 불우한 환경, 그로 인한 인격 형성 악영향, 분만 직후 매우 불안정했던 정신과 신체, 단기간 반복된 출산으로 좋지 않았던 건강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
B씨가 2개월 가까이 구속돼 있으면서 범행을 반성하고 있는 점, 시신을 유기하지 않은 점 또한 양형에 반영했다.
영아 살해 피고인 대부분은 이처럼 낮은 형을 선고받아왔다.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있는 영아살해죄 판결문을 보면 영아살해 5건 중 최고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이었다.
대부분 징역 1∼3년에 집행유예 2∼4년에 머물렀다.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된 사례도 있었다.
형법에 명시된 징역 10년에 가까운 형량이 선고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형법 251조는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해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살인죄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지난해 11월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세계 아동학대 예방에 날에 맞춰 "영아살해죄·영아유기죄를 폐지해 보통의 살해·유기죄와 동일하게 처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68년 전 만들어진 이 법은 전쟁 직후 극심한 가난으로 아이를 제대로 부양할 수 없다는 점, 성범죄 등으로 인한 출산 등의 사정을 고려해 일반 죄보다 낮은 형량을 적용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가난과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던 70년 전 대한민국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영아는 저항할 능력이 없는 데다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이기에 영아살해죄를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무부 역시 영아살해죄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법률사무소 신세계 나영주 변호사는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동물의 생명권도 보장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법 제도가 흘러가고 있는 시대"라며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나쁜 행위는 중형으로 다스리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영아살해죄 형량을 적극적으로 상향하는 한편 영아살해 피고인 대부분이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일을 벌이는 만큼,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는 제도적 개선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영아살해가 벌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에서 찾아야 하기에 형량 상향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모악 최영호 변호사는 "아이를 죽음으로 내모는 영아살해의 배경은 적절하게 갖춰지지 않은 출산 환경"이라며 "영아는 물론 산모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지는 이러한 위험한 행위는 출산 교육, 성교육 등 적절한 출산 환경이 조성된다면 충분히 줄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형량을 높이기보다 불우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에 놓인 산모가 없는지 살피고, 출산 후 양육이 어렵다면 낙태나 영아살해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생명을 지킬 방법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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