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치솟는 사우디 무함마드 왕세자..외교무대에 잇단 존재감

박효재 기자 2022. 6. 2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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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20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공항에 도착한 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카이로|로이터연합뉴스

자국 반체제 언론인 살해 지시 의혹, 예멘내전 개입 등으로 비난받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주요국 정상들과 회담을 재개하며 외교무대에서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사우디의 인권탄압을 앞장서 비난했던 미국과 터키 대통령까지 무함마드 왕세자와 회동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주요 외신들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고유가, 이란 핵협상 복원 좌초 위기 등을 지렛대 삼아 몸값을 높인 결과라고 평가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이집트 방문길에 올랐다. 그는 이집트를 시작으로 요르단, 터키를 잇따라 방문해 정상들과 회동할 예정이다. 다음달에는 걸프협력회의(GCC) 참석차 사우디를 방문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난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아랍 국가 방문은 2019년 일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후 3년만의 첫 해외 순방일정이다.

특히 주목받는 일정은 22일 터키 방문, 다음달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양자 회담이다. 터키는 2018년 자국 이스탄불 영사관에서 벌어진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배후로 무함마드 왕세자를 지목하고, 이후 걸프지역에서 사우디의 영향력 줄이기에 앞장서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사우디의 인권 상황을 비판하면서 “사우디 왕족 가문이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그들을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한달 만인 지난해 2월 미국 국가정보국(DNI)이 무함마드 왕세자가 카슈끄지 암살을 승인했다는 기밀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터키와 미국의 입장 변화 배경으로는 경제난이 공통적으로 꼽힌다. 범아랍 매체 뉴아랍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내년 6월 대선을 앞두고 사우디와 관계 개선을 통해 만연한 인플레이션과 리라화 가치 폭락 등 국내 경제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길 원한다고 지적했다. 터키는 지난 4월 연간 물가상승률이 61%로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앞서 지난 2월에는 리라화 가치 폭락을 막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을 확대한 바 있다. 터키 현지매체들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무함마드 왕세자 방문기간에 사우디로부터 직접 투자, 에너지 분야 지원에 관한 대규모 양자협정 체결을 이끌어내길 원한다. 관광업이 주요 산업인 터키 입장에서는 사우디와 관계 개선을 통해 사우디 관광객이 늘어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터키는 이번 무함마드 왕세자 방문에 앞서 이미 지난 4월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사우디 국적 용의자 26명에 대한 궐석재판을 중단하고 사건을 사우디 법원에 넘기는 등 환심을 사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이어 에르도안 대통령은 4월말 사우디를 방문해 무함마드 왕세자와 회동했다.

고유가와 4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할 바이든 대통령도 무함마드 왕세자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반적인 소비자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휘발유 가격은 이달 들어 1갤런(3.78ℓ) 당 5달러를 넘어섰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2달러 안팎까지 떨어졌던 것에 비하면 2배 이상 뛰었다. 고유가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이로 인한 급격한 긴축은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에 경기침체)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미드하트 렌데 전 주카타르 터키 대사는 도이체벨레와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에 대처할 여력이 있는 세계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라면서 “현실정치 측면에서 한 나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중동지역 군사·외교 정책 유지 측면에서도 무함마드 왕세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란의 핵활동 축소를 전제로 각종 대이란 제재 해제를 골자로 하는 이란 핵협상 복원은 최근 교착 상태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란이 핵협상 복원을 거부하고 군사행동을 확대할 경우 위험 관리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란의 군사행동 확대 견제를 위해서는 사우디와 이스라엘 등 반이란 국가들의 결속이 중요하다.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외무장관도 지난 15일 “사우디와 이스라엘 등 중동 내 많은 국가가 이란 핵 능력의 위협 아래 있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와 관계정상화에 힘을 싣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외교적 노력이 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우디가 주축이 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지난 2일 러시아를 제외하고 앞으로 두 달 간 일일 원유 생산량을 65만배럴까지 증산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사우디는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 후티 반군을 몰아내기 위해 개입한 예멘 내전에서도 정부군과 반군 간의 휴전을 이끌어낸 뒤 유지하고 있다.

사우디는 앞서 지난해부터 터키와도 관계 개선에 나섰다. 사우디는 리비아 동부 군벌에 납치된 터키인들 석방을 위해 중재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1월 리비아 동부 군벌은 2년 간 억류했던 터키인들을 풀어줬다. 같은 달 무함마드 왕세자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마지브 빈압둘라 알카사비 사우디 상무부 장관은 이스탄불을 방문해 푸아트 옥타이 터키 부통령과 만났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번 해외 순방을 계기로 주변 아랍 국가들에 대한 경제 지원을 대폭 늘리면서 본격적으로 역내 영향력 높이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정부는 21일 성명을 통해 무함마드 왕세자 방문 기간 동안 사우디와 풍력발전소 건설, 다목적 항구 터미널 개발 등 총 14건, 77억달러 규모의 경제협력협정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앞서 지난 3월에도 이집트에 50억달러를 지원했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후 방문할 요르단과 터키에서도 대규모 경제협력협정이 체결될 것으로 봤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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