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환경운동가 탈세 혐의 징역형 선고..베트남 정부는 무엇을 두려워하나[시스루피플]

박은하 기자 2022. 6. 2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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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이 티 카인/골드만 환경 재단

환경운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한 베트남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응우이 티 카인(46)이 탈세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환경운동을 토대로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베트남 정부가 탈세를 명분으로 환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AFP통신에 따르면 하노이인민법원은 지난 17일 탈세 혐의로 기소된 응우이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탈세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환경운동가는 응우이뿐이 아니다. 앞서 하노이 법원은 지난 1월 전직 언론인이자 비영리재단 미디어 교육 커뮤니티 센터 설립자 마이 판 로이에게 징역 4년과 벌금 10억동(약1억1000만원), 지속가능발전연구센터의 비정부법률정책 책임자 당 딘 바흐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베트남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나 자유무역협정(FTA) 정책 등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이들이다. 이들의 선고 결과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응우이가 체포됐다.

국제사회에서 석방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베트남 경찰 당국이 다른 시민운동가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날 카인을 체포했다는 점을 주목한다”며 “미국은 베트남 정부에 카인과 환경운동가들을 석방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노이 주재 영국대사관과 기후행동네트워크(CAN)도 응우이와 환경운동가들의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응우이는 베트남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바꾼 환경운동가다. 그는 베트남 북부 박암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는 마을에서 자라면서 심각한 대기오염에 시달렸고 지역주민들이 암에 걸리는 것을 목격하며 자랐다. 외교관이 될 생각으로 역사, 프랑스어 등을 공부했으나 대학을 졸업하고 물 문제 관련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면서 환경운동가의 길에 발을 들였다. 2011년 정책 싱크탱크인 녹색혁신 및 개발센터(GreenID)를 설립했다. 11개의 사회조직을 엮어 지속 가능한 에너지 동맹을 설립했다. 전문가와 고위 관료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구체적 정책을 통해 정치 지도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응우이의 활동 방식이었다.

베트남 정부는 2011년 국가 중장기 전력계획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7만5000㎿ 용량의 석탄발전소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전력수요가 연간 12%씩 치솟자 값싼 석탄발전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었다. 계획이 현실화되면 대기오염과 미세먼지 등으로 2만명이 조기 사망할 것이란 하버드대의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응우이는 2013년부터 전문가들과 협력해 석탄발전 비중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석탄발전의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토론과 언론보도를 이끌냈다. 베트남 정부는 2016년 모든 신규 석탄발전소에 대한 개발 계획을 검토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1%로 끌어올린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계획 변경으로 베트남 정부는 매년 1억1500만t의 탄소배출을 절감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공로로 응우이는 2018년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했으며 베트남 언론으로부터 ‘환경영웅’이라고 불렸다.

지난 2월 응우이가 체포됐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자 전 세계 환경운동계가 충격에 빠졌다. 뉴욕타임스는 “카인의 투옥은 환경보호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모순적 접근과 부처 간 알력을 반영한다”며 “대기오염과 공장의 화학물질 유출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워낙 커서 정부는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지만 한편에선 베트남이 선진국들로부터 탄소감축 압력을 받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불평하는 관료들도 있다”고 전했다.

시비쿠스의 시민사회 자율성 평가. 베트남은 가장 자율성이 낮은 상태로 평가된다.

시민사회의 성장을 막으려는 베트남 정부의 무리수라는 비판도 나온다. 전 세계 160개국 시민단체로 구성된 글로벌 인권단체 시비쿠스의 분류에 따르면 베트남 시민사회는 정부로부터 자율적인 독자적 공간이 극히 적은 폐쇄된 상태로 평가된다. 베트남은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 이후에도 연성 권위주의적 체제를 유지해 왔다. 경제성장과 함께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최근 들어 환경운동을 매개로 풀뿌리 시민운동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베트남 공산당은 환경운동가들의 활동이 자신들의 정치적 독점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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