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 '짝퉁' 있어도 쿠팡은 '죄'가 없다..중개자일 뿐이니까

유선희 2022. 6. 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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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시계산업조합과 마찰 이후로도 '가품논란' 계속
소비자주권시민회의 "2019~2021년 적발 10만건 육박"
"판매자 처벌 '상표법' 넘어 오픈마켓에 책임 지워야"
쿠팡에서 가품을 구매한 뒤 판매정지가 된 화면. 독자 제공

얼마 전 쿠팡 누리집을 둘러보던 최아무개(43)씨는 국내에서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다이슨 에어랩이 시중가보다 싼 가격에 판매되는 것을 발견했다. ‘유럽 정품 구매 대행’ ‘품질 불량 시 무상 교환 1년’ 등의 문구에 ‘혹’해 상품을 구매했던 최씨는 막상 배송된 물건을 살펴보다 코드 부분에 케이시(KC) 인증 마크가 없고, 필터 부분이 어설프게 마무리돼 있는 등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결국 다이슨 공식 에이에스(AS)센터에 해당 제품을 들고 갔다가 ‘가품 판정’을 받았다는 최씨는 “국내 이커머스 업체의 대표 격인 쿠팡에서 버젓이 가품이 팔리는데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며 “몸집만 불릴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믿을 수 있도록 ‘짝퉁’을 걸러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2020년 롤렉스 등 유명 명품 브랜드의 ‘짝퉁’(가품) 수백 종을 판매해 시계산업협동조합과 마찰을 빚은 바 있는 쿠팡이 여전히 ‘짝퉁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쿠팡 쪽은 인공지능(AI) 시스템까지 도입해 가품을 걸러내고 있다며 억울해하지만, 소비자단체는 “쿠팡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는 만큼,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위조상품 판매에 대한 엄격한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2일 소비자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특허청의 2019~21년 ‘플랫폼별 위조상품 적발 및 유통 건수’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쿠팡의 위조상품 적발·유통 건수가 총 9만6898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위메프 6만6374건, 인터파크 2만3022건, 지마켓 9017건, 11번가 7578건 등 다른 이커머스 업체에 견줘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이 단체가 특허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쿠팡 누리집서 적발된 위조상품은 가방·지갑 등 잡화가 5만3522건(55.2%)으로 가장 많고, 이어 의류가 2만9250건(30.2%), 가전·디지털 제품이 9470건(9.8%)으로 그 뒤를 이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소비자감시팀 관계자는 “55.2%를 차지한 잡화의 경우, 대부분 샤넬, 구찌, 발렌시아가 등 고가 명품을 모방한 모조품이고, 30.2%를 차지한 의류 역시 마르지엘라, 톰브라운 등 명품 브랜드의 짝퉁 상품”이라며 “소비자로서는 진품과 가품을 구분하기 어려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며, 실제로 적발되지 않은 건수까지 포함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가품이 쿠팡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쿠팡에서 판매되는 ‘짝퉁 제품’은 그 범위 역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반려동물 가구가 늘면서 기존에 없던 반려동물용품 위조상품까지 등장한 것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자료를 보면, 기존에 없던 반려동물용품 위조상품이 2021년 54건이나 발생했다.

자료: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이런 비판에 대해 쿠팡 쪽은 “쿠팡은 엄격한 입점 등록 절차를 운영해 중국을 포함한 해외 판매자는 입점 시점에 각 국가가 승인한 인증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전담 인력의 심사를 통과한 판매자에 한해 입점을 허용하고 있다”며 “일부 악성 판매자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고자 24시간 모니터링 및 추가 검증을 하고 있으며, 즉각적이고 단호한 조처를 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해명에 앞서 ‘적극적인 조처’가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네이버는 최근 가품 판매 확률이 높은 스포츠·화장품·잡화·패션의류 등에 대해, 해외 거주자는 사업자와 개인을 막론하고 스마트스토어 진입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에 나선 바 있다.

위조상품 판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오픈마켓에도 책임을 지우는 관련 법안 처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공정위가 내놓은 ‘전자상거래 등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 등이 있지만, 새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에 막혀 국회 처리 여부가 불투명하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소비자감시팀장은 “유일한 처벌 근거는 ‘상표법’ 제230조의 ‘상표권 또는 전용사용권의 침해를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규정뿐”이라며 “하지만 오픈마켓은 ‘판매자’가 아닌 ‘중개자’로 분류돼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플랫폼 사업자도 책임을 지도록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매출이 22조원에 달한 쿠팡에 사회적 영향력만큼 책임도 지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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