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무원이 말했다.."단체 정관서 성평등 빼면 등록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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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최나현(부산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씨가 지난 18일 열린 한국여성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지역×청년×여성의 여성주의 실천 경험에 관한 연구-'충전소'를 만들고, '기피시설'로 여겨지다> 에 담긴 내용이다. 지역×청년×여성의>
연구자 최나현씨는 <한겨레> 와 한 통화에서 "지역에서 청년 여성들이 각자가 지닌 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지역 사회의 보수성·폐쇄성, 페미니즘 의제를 다루는 역량 부족이 청년 페미니스트의 실천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동시에 전달하고 싶었다"며 "'지역 소멸'이라는 프레임 탓에 지역이 미래가 없는 공간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청년은 패배자처럼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실제 이들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전하려 했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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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지역 페미니스트가 마주한 현실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을 위해 신청서를 제출했더니 ‘단체 정관에서 성평등 의제를 삭제해야 예술인단체로 등록해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지역 여성주의 활동 예술인 ㄱ씨)
“저희가 활동할 공간을 좀 확보하고 싶은 마음에 일단 (지방정부) 청년 부처를 만나고, 그다음에 여성 부처를 만났어요. 근데 청년 부처에 가면 ‘이거는 여성 부서에 얘기해 봐라’ 하고, 여성 부처에 가면 ‘청년 부처에 얘기해 봐라’ 하는 분위기여서….”(지역 여성주의 문화기획자 ㄴ씨)
연구자 최나현(부산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씨가 지난 18일 열린 한국여성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지역×청년×여성의 여성주의 실천 경험에 관한 연구-‘충전소’를 만들고, ‘기피시설’로 여겨지다>에 담긴 내용이다.
최씨는 지역에서 각종 모임,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하는 9명의 페미니스트를 인터뷰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지역 청년 여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스트 그룹의 활동은 ‘충전소’처럼 기능하지만, 지역 사회는 이 모임을 ‘기피시설’로 여기고 있다.” 지역의 페미니즘 기반 모임은 일상에서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실천하고 싶어하는 청년 여성에게 ‘숨구멍’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모임을 유지·확장하기 위해 공공기관 등을 찾아 지역의 인프라를 활용하려 하면 페미니스트들은 곧바로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맞닥뜨린다.
논문에 등장한 인터뷰 참여자들은 지역에서 ‘페미니즘’은 지워져야 할 무언가로 인식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부 지방정부 공무원은 비영리 민간단체 설립 신청서에 ‘성평등’이 포함되었다며 반려하고, “그런 식(여성끼리만 모여 있는 식)은 안 되고, 다른 식(남성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하라”는 충고를 건네기도 한다. 지역 “어른”으로 여겨졌던 활동가도 ‘여성운동은 한물갔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지역 청년 여성들은 조언을 구할 데가 마땅치 않다.
연구자는 젊은 여성만으로 모임을 하겠다는 시도 자체를 일부에선 ‘꺼려지는 일’로 여긴다는 점을 포착했다. 이런 결과로, 페미니스트 활동가의 문의에 대한 답변을 지방정부의 청년 부서와 여성 부서가 서로 미루는 사례도 있었다. 서울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인터뷰 참여자는 페미니즘을 대하는 서울과 지역의 온도 차는 상당하다고 전한다. “서울 남성 직원(공무원)은 (설령 본인이 동의하지 않아도) 이게 시대적 흐름이라는 걸 알고 그 자리에서 ‘깽판’ 놓는 짓은 절대로 안 해요.”(ㄱ씨)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지역 분위기 속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페미니즘 기반 문화·예술 모임은 청년 여성들에게 “충전소”가 됐다. 연구자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태동한 ‘페미니즘 리부트 세대’(여성주의 담론을 적극적으로 확산시킨 세대)는 “자신의 문화적 자원을 바탕으로 여성주의 콘텐츠를 만들어 대중(특히 2030여성)을 만나려는 열망이 크다”고 했다. 과거에는 페미니즘 문화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가야 했다면, 이제는 지역에서 열린 여성주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 사람들도 방문”하는 일도 종종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 인터뷰 참여자는 “단순히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싶은 여성들이 많은 게 아니라 페미니즘 관점을 공유하는 사람과 창작하고 싶은 열망이 이러한 결과를 만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연구자 최나현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역에서 청년 여성들이 각자가 지닌 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지역 사회의 보수성·폐쇄성, 페미니즘 의제를 다루는 역량 부족이 청년 페미니스트의 실천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동시에 전달하고 싶었다”며 “‘지역 소멸’이라는 프레임 탓에 지역이 미래가 없는 공간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청년은 패배자처럼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실제 이들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전하려 했다”고 말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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