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운의 시론>검사 한동훈, 정치인 한동훈

기자 2022. 6. 22. 11: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도운 논설위원

법무장관 자리는 독이 든 聖盃

대선 ‘빅3’에 정권 2인자 지목

검사로 죽거나 정치인 될 운명

특수부 편중 대신 탕평 펼치고

野에 이길 땐 이기고 질 땐 져야

尹과도 기본적 긴장 유지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으로 선택한 것은 정치적 배려심과 비정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이 검사의 칼을 내려놓게 했다. 그동안 너무 많은 피를 묻혔다. 더 이상 업보를 쌓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당선되자 한동훈 본인도 더는 수사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정치가 비정한 것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떠안은 역할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최전선에서 야당과 싸우는 선봉장이 돼 버렸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최강욱·김남국·이수진 등 ‘처럼회 3총사’의 자책골로 잘 넘겼다. 그러나 검찰총장도 없이 문재인 정권 수사가 시작되면서 선전·선동과 이전투구에 능한 더불어민주당과 일전을 벌여야 한다.

한동훈에게 법무부 장관 자리는 독이 든 성배(聖盃)다. 마시고 죽을 수도 있고, 거룩하게 정치 지도자로 부활할 수도 있다. 벌써 차기 대선 주자 ‘톱3’에 올랐고, 윤석열 정부 ‘2인자’로 지목됐다. 야당에서는 “한 정권, 두 개의 태양”이라고 이간질을 한다. 임기를 막 시작한 윤 대통령에게 면구스러울 수 있지만, 여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권력 운용에는 오히려 도움되는 측면도 있다. 왕조 시대에 왕이 등극하면 왜 세자 책봉부터 서둘렀겠는가. 한동훈은 장관을 마치고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2024년 총선에 출마하게 될 것이다.

한동훈이 검사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려면 고민하고 변신해야 한다. 첫째, 탕평을 추구해야 한다. 검수완박 때문에 수사를 서두를 필요는 있다. 특수부 검사를 동원하려는 욕심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검찰 조직 전체를 살펴야 한다. 현재 공직 사회는 윤 대통령이 검사와 기획재정부 출신을 편애한다고 불평한다. 장·차관 142명 가운데 검사 출신이 6명(4.2%), 1급 이상 246명 가운데 검찰 출신 대통령실 비서관이 6명(2.4%)뿐이지만 ‘검찰 공화국’ 프레임에 빠져 지지율 하락 요인이 됐다. 이성윤·심재철 같은 ‘정치 검사’들은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너희도 당해 보라”는 식으로 한꺼번에 법무연수원 발령을 내는 것은 조금 유치해 보일 수 있다.

둘째, 윤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기본적 긴장 관계는 필요하다. 적어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 호위무사·방패막이만 해서는 안 된다. 윤 정부는 한동훈이 빠진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엄정하게 수사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면 정부 전체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한동훈이 어떤 정치적 야망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박정희의 3선 개헌과 유신을 막지 않은 김종필은 대선 후보에 그쳤고, 짜고 쳤을지언정 전두환의 호헌에 맞서 6·29 선언을 감행한 노태우는 대통령이 됐다.

셋째, 야당과도 웃으며 지낼 줄 알아야 한다. 한동훈은 야당과의 대결에서 백전백승이었다. 그러나 말싸움 잘해서 성공한 정치인은 없다. 이길 때 이기고, 질 때 지면 된다. 대중은 두 가지를 싫어한다. 못난 사람이 잘난 척하는 것. 그리고 잘난 사람이 잘난 척하는 것. 전자는 문 정권에서 신물 나게 봤다. 윤 정권에서는 잘난 사람이 겸손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문 정권 수사에 ‘올인’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은 현명치 않다. 문 정권 적폐청산은 불가피하다. 문 대통령은 권력 비리 수사를 틀어막아 40% 지지율을 지켰다. 이제 진실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여야 정면충돌 상황은 피해야 한다. 경제·안보 위기 상황에서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 윤 정부가 잘하는 게 수사뿐이라는 인식을 주면 국민은 실망할 것이다. 수사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로서 말해야 한다.

검사 한동훈은 ‘조선 제일 검’이었다고 한다. 정말일까? 진짜 고수는 칼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존중받는 특수부 검사 심재륜은 후배들에게 ‘수사십결(搜査十訣)’을 남겼다. 첫 번째 항목은 ‘찌르되 비틀지는 말라’는 것이다. 한동훈은 그 항목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수사십결이 2009년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 뒤에 나온 것이라는 점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지 말고 승복시키라’는 두 번째 항목은 명심하길 바란다. 그것이 정치인 한동훈이 오래 살아남는 길이다.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