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천연염색과 바느질로 꽃을 피워내다

진성철 2022. 6.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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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부부의 가족 공방 '차앤박콜렉션'
'오마주 투 네이처'. 천연 염색한 천으로 꽃을 형상화했다 [사진/진성철 기자]

(안성=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쪽은 파랑을, 치자는 노랑을, 소목은 빨강을 선물한다. 쪽, 치자, 소목에 물든 천은 꽃잎이 되고, 예술가의 바느질에 '자연을 담은 꽃'으로 피어난다.

자연에서 얻은 색과 천으로 꽃을 만들고, 옷을 지어내는 화가 가족, 천연 염색으로 자연을 담아내는 예술가들이 작업에 몰두하는 곳. 바로 '차앤박콜렉션'이다.

화가 부부와 딸이 바느질로 창조하는 꽃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차앤박콜렉션 공방에서 2019년 10월 열린 오픈스튜디오 [차앤박콜렉션 제공]

꽃들이 벽에 걸려 있다. 한 아름이 넘을 만큼 큰 꽃도 있다. 꽃은 파랑, 노랑, 빨강, 초록 등 여러 색을 가졌다.

자연 그대로 자란 꽃은 아니다. 꽃과 사랑에 빠진 예술가가 자연에서 얻은 천을 꽃잎 모양으로 자르고, 천연염료로 물들이고, 바느질과 재봉질을 더 해 만든 꽃이다.

화가 부부인 차윤숙과 박원태는 딸과 함께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시골 마을에서 이처럼 천연 염색한 천으로 옷과 생활용품, 꽃을 만든다. 부부는 치유농장 '자연을 그리는 사람들'과 천연 염색 제품을 만드는 '차앤박콜렉션'을 꾸려가고 있다.

보카라 뉴욕 갤러리에서 2019년 4월 열린 '오마주 투 네이처' 퍼포먼스 [차앤박콜렉션 제공]

차윤숙은 지난 2019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트쇼에 꽃들을 선보였다. 주최 측이 신선하다며 먼저 다가왔다. 그들은 색다른 꽃들에 반해 퍼포먼스를 부탁했다. 차윤숙은 딸과 함께 직접 천연 염색해서 만든 옷을 입고 무대에 나섰다. '오마주 투 네이처'(Homage to Nature)란 이름을 준 꽃들로 전시장을 장식했다. 어머니 같은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자연은 인간을 끝까지 보호해 준다"고 믿는다.

우루과이 에스테 아르테에 2020년 1월 전시된 '오마주 투 네이처' [차앤박콜렉션 제공]

한국 예술작품에 특화한 로스앤젤레스 전시장을 둔 보카라 아트 갤러리가 그 작품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보카라 갤러리는 '오마주 투 네이처'와 차윤숙을 보카라 뉴욕과 마이애미 갤러리에도 초빙했다. 차윤숙은 보카라 갤러리와 함께 우루과이 휴양도시 푼타델에스테에서 2020년 1월에 열린 에스테 아르테에도 초대전 형식으로 참가했다. 우루과이 이후 예정됐던 해외 전시 일정은 코로나 탓에 아쉽게도 중단됐다고 한다.

'쪽'으로부터 색과 치유를 함께 얻는다

옥빛인 쪽물을 발효시키면 인디고, 짙은 파란색 염료가 된다 [차앤박콜렉션 제공]

차앤박콜렉션은 작품에 사용하는 천을 모두 '쪽'으로 기본 염색한다. 쪽이 가진 천연의 아름다운 파란색과 약효 때문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쪽은 독을 다스린다. 아토피, 땀띠 등 피부질환 치료에도 좋다. 차윤숙은 둘째 아이의 아토피를 쪽으로 치유했다고 전했다. 부부의 일을 돕는 첫째 딸 하연 씨는 말벌에 발을 쏘인 뒤 쪽물에 담갔더니 부기가 빠졌다고 했다.

쪽 모종 [사진/진성철 기자]

파랑을 얻어내는 재료인 쪽은 남부 지방에서 찾아낸 우리나라 자생 쪽이다. 따뜻한 지역의 쪽이 염료인 인디고를 더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다. 쪽을 경기도 안성의 햇볕 좋고 물 좋은 산골짜기 밭에 심어 가족이 직접 재배한다. 지금은 작품 주문량이 많아 일부는 수입한다.

생 쪽을 항아리에 담아 물로 우려낸다 [차앤박콜렉션 제공]

쪽은 4, 5월에 심어 7, 8월에 수확한다. 생 쪽을 따서 세척하고 항아리에 담아 물로 우려낸다. 처음 우려낸 쪽물은 옥빛이다. 쪽물을 30℃에서 15일 정도 발효시키면 인디고, 짙은 파란색 염료가 된다. 생 쪽 일부는 연두색 염색을 위해 냉동으로 보관하고, 발효된 인디고 염료는 사용하기 편하게 덩어리로 만들어 둔다. 수확부터 한 달 정도 걸린다. 쪽 염료를 얻어내는 과정이 힘들다 보니 농사꾼인지 예술가인지 모르겠다고 차윤숙은 말했다.

인디고 덩어리(왼쪽)와 냉동 보관한 생 쪽잎 [사진/진성철 기자]

노란색은 치자, 울금, 대황에서 나오고, 빨간색은 소목, 홍화 등의 한약재로 염료를 만든다. 자연이 준 파랑, 노랑, 빨강 삼원색이 있으니 초록, 주황, 보라 등 다른 색은 덤으로 따라온다.

담그고 말리고…화가만의 천연 염색법

안성 차앤박콜렉션의 쇼륨 [사진/진성철 기자]

차윤숙은 동양화를, 남편 박원태는 서양화를 전공했다. 학교시절 부터 쪽, 치자 등 천연염료로 그림을 그리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천연 염색에 이르게 됐다.

좋은 쪽을 구하기 위해 남쪽 지방을 직접 헤맸고, 염색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한다. 한국 전통 염색법을 꼭 따르지는 않는다.

천연 염색을 시작한 지 벌써 18년 정도가 됐다. 70℃ 정도의 뜨거운 쪽물에 천을 넣어 염색한다. 쪽물에 담그고 말리고 하는 횟수가 반복될수록 천은 더 진하게 물들고, 산화되는 정도에 따라 색도 달라진다.

천연 염색으로 만든 옷, 스카프, 가방, 신발 [사진/진성철 기자]

기본 염색은 남편 박원태가, 그리고 치자, 소목 등 한약재 염색은 부인 차윤숙이 주로 맡아서 한다. 부부가 회화를 전공하고 작품 활동을 한 덕에 색에 관한 이해도가 높다고 자부한다.

천연 염색한 옷들 [사진/진성철 기자]

실내정원·화원·쇼룸이 있는 공방

안성 차앤박콜렉션 공방에서 작업 중인 차윤숙 작가 [사진/진성철 기자]

차앤박콜렉션은 차윤숙이 작품 활동을 천으로 옮기면서 태동했다. 평면적인 캔버스를 벗어나 천으로 입체적인 꽃을 만들면서부터다. 작품을 본 사람들이 옷이나 스카프, 가방 등 실용적인 제품을 만들어 보라고 권유했다. 예술가의 손길이 더해진 천연 제품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주문량이 많아지면서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게 됐다.

2022년 2월 평지로 옮겨 문을 연 안성 차앤박콜렉션 [사진/진성철 기자]

공방은 2022년 초에 안성의 산골짜기에서 좀 더 접근이 쉬운 평지로 옮겼다. 실내정원과 온실, 쇼룸, 작업실 그리고 쪽, 목화 등 식물을 재배하는 화원도 갖췄다.

안성 차앤박콜렉션의 실내정원 [사진/진성철 기자]

실내정원에서는 블루아이스, 셀프레아 등 공기 정화에 탁월한 북유럽 편백, 엔들리스 썸머 등 여러 수국과 흔하지 않은 식물들을 볼 수 있다. 전시된 '오마주 투 네이처' 작품 꽃들도 감상할 수 있다. 또 방문객이 작가와 원하는 색상과 컨셉의 제품에 대해 대화하고 의뢰할 수 있다. 쇼룸에서는 천연 염색으로 만든 옷, 가방, 쿠션, 이불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사전예약하고 찾아가는 게 좋다. 안성 작업실을 방문하기 어렵다면 2014년에 문을 연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가게를 찾아가도 좋다.

인사동 차앤박콜렉션의 내부 [사진/진성철 기자]

차윤숙을 찾아간 날, 그는 새로운 전시를 위해 꽃잎을 말리고 있었다. 꽃잎들은 자연이 선물한 온갖 색으로 물들어 빛났다.

천을 잘라 천연 염색한 뒤 말리면 화려한 꽃잎으로 변한다 [사진/진성철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z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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