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기대는 사회[오늘을 생각한다]

2022. 6. 2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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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충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꽃다운 나이 스물셋, 이르게 차려진 무덤 앞엔 해마다 노잣돈 300원이 놓여 있었다. ‘누가 우리 아이를 이렇게 기억해주나?’ 아들을 보러온 어머니의 궁금증이 풀리기까진 7년이 걸렸다.

2015년, 육군 모 부대에서 일병 한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그의 이름은 고동영이다. 유서엔 부대와 간부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헌병이 조사를 나온다는 소식에 중대장은 부대원을 불러 모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이상한 소리 말고 모른다고 말해라” 중대장의 지시는 그랬다. 모두 입을 모아 평소 우울해하던 병사가 업무 미숙에 따른 상관의 질책에 부담을 느껴 사망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사망 원인은 그렇게 정리됐다. 조사 기록 한구석엔 ‘사망 관련 부대 문제점을 발설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나요?’란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설문지가 있었지만 작은 양심은 그대로 묻혔다. 그렇게 부대는 일상을 되찾았다. 유가족은 국가보훈처에서 보훈 비해당 처분을 받았다. 부적응으로 사망한 병사는 보훈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들이 남기고 간, 원망 어린 말들을 쥐고 어쩔 길 없는 부모의 마음만 타들어갔다.

얼마 전, 7년 만에 고 일병과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한 간부가 고 일병의 어머니를 찾았다. 그는 중대장의 사건 은폐 지시와 평소 고 일병이 겪었던 폭언과 가혹행위 정황을 제보했다. 공소시효 만료까지 딱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중대장은 지난 5월 말 군사법원에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다. 오랜 시간 유가족 연락처를 수소문했던 제보자는 우연한 기회로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을 위한 공연을 알게 됐고, 공연 관계자를 통해 어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해마다 고 일병 앞에 노잣돈을 놓고 간 것도 그였다. 누군가의 양심은 그렇게 따뜻한 위로가 됐다.

사람들은 군대에서 무언가 은폐되고 조작됐다는 소식에 놀라지 않는다. 군부독재 치하의 군대에서 의문사한 이들로부터, 인권침해와 성폭력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까지 그런 일을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 2014년에는 선임병들의 집단구타로 사망한 고(故) 윤승주 일병의 죽음이 만두를 먹다 발생한 질식사로 둔갑할 뻔했다. 그때도 용기를 내 진실의 길을 튼 이는 옆 부대 병사였다. 운이 좋아 공익제보자를 만날 수 있었다는 윤 일병 어머니를 볼 때면 만감이 교차한다.

때때로 묻혀버린 진실이 누군가의 양심과 용기를 빌려 세상의 빛을 보지만, 그보다 더 많은 진실이 오늘도 양심과 용기의 행방을 애타게 찾는다. 잘못을 숨기고 왜곡하는 것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더 안온한 삶을 가져다준다는 그릇된 믿음이 깨지지 않는 한 비참한 헤맴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양심에 기댈 것인가. 군대에서, 나아가 공권력의 모든 영역에서 한줌의 권력을 부려 진실을 은폐하고, 축소하고, 조작하는 이들을 단죄할 수 있는 새로운 법과 제도를 고민해야 할 때다. 양심이 간신히 버텨 지탱하는 세상은 언제나 위태로울 뿐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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