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운영 참 쉽다[편집실에서]

2022. 6. 22.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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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열린 한 국무회의에서 교육부 차관이 혼쭐이 났다고 합니다.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을 마련해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문에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등 제약 여건을 언급하며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가 불호령이 떨어졌다는 건데요. 비공개회의였다고 하니깐 맥락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언론이 잇달아 해당 발언을 소개하고 후속 보도가 이어지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입니다.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서 이견이 나왔다고 위계를 앞세워 찍어눌렀다는 사실이 ‘21세기가 맞나’ 싶게 낯설지만 이런 분위기, 장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이명박 정부 시절에 ‘조인트’ 사건(한 지상파 방송사의 사장이 ‘큰집’에 불려가 조인트를 까이고 이른바 ‘좌파 대청소‘에 나섰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큰 파장을 낳았다)이 있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최고통치권자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던 코털이 뽑혀나가는 수모를 당한 당시 집권당(공화당)의 거물급 의원이자 재벌총수의 비화(秘話)가 떠오릅니다. 유신독재 시절까지 연결시킨 건 너무 나간 생각이라고요?

이어지는 상황을 한번 보죠. 그날 이후 무슨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당장 인력 확충이 시급한데 지금의 대학 졸업생 규모로는 턱도 없답니다. 마치 대기업들이 반도체 전공자들은 졸업만 하면 다 뽑아 평생 책임이라도 질 듯한 기세입니다. 장관 초청 특강이 열리고 당정 협의, 관련 세미나 등이 줄을 잇습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천지가 무슨 개벽이라도 한 걸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년층 취업 비상”, “고학력 졸업자도 갈 곳 없다” 등의 보도가 쏟아지던 나라였습니다. 특히 대기업의 문턱은 취업준비생들에겐 ‘바늘구멍 낙타 통과하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속내를 내비칩니다. 수도권 대학에 반도체 관련학과의 정원을 늘리겠답니다.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대학 강의 하나씩 맡을 기회는 늘어나겠네요. 가뜩이나 심각한 수도권 집중 현상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지적이 나오자 이번에는 수도권·비수도권 모두 정원을 늘리겠답니다. 지금도 정원을 다 못 채워 외국인 유학생들이 없으면 운영조차 버거운 지방대학들이 즐비한데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반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장관도 없는 상황에서 큰 숙제를 받아든 교육부에 비상이 떨어졌습니다. 이른바 ‘돈 되는’ 학과만 남기는 방식으로 통폐합하거나 문·사·철 정원을 줄이고 반도체 분야 정원만 늘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대학이 무슨 기업의 필요에 맞춰 인력을 ‘납품’하는 공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윤석열 정부가 의욕만 넘쳐 칼집에서 성급하게 칼을 꺼내들긴 했는데 과연 어떻게 휘두를지, 일련의 ‘호들갑’이 어떤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게 될지 다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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