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남산도시재생 어르신일자리복지센터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2022. 6.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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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천안의 지명에는 유달리 용이 많이 등장합니다. 쌍용동, 삼룡동, 구룡동과 같이 용이 등장하는 동 지명이 13곳, 읍면동 지역이 37곳이나 됩니다. 동 지명의 용 머릿수는 28두고, 읍면지역 용 머릿수 49두니 이만하면 도시의 규모에 비해 용 머릿수 77두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닐 것입니다. 천안 지명에 용이 등장한 것은 고려 시조인 태조 왕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930년 경 태조 왕건의 술사인 예방이 후백제 공략을 위한 군사 거점 도시를 설치하라고 진언합니다. 예방은 천안의 풍수적 형세가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오룡쟁주(五龍爭珠)의 형세니 이곳에 큰 고을을 두면 백제가 스스로 항복할 것이라고 태조 왕건을 설득했습니다. 오룡은 남산을 중심으로 한 나지막한 다섯 산을 일컫고 여의주는 천안의 남산을 말합니다. 남산은 야트막한 봉우리가 도심의 평지에 볼록 솟아오른 곳입니다. 천안시민들도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쳐버리는 그 정도의 산입니다.

오랜만에 남산에 올라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이 지역에 관심을 가져온 터라 재래시장을 방문할 때면 꼭 남산을 올랐습니다. 남산의 서쪽은 경부선이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남쪽은 고가도로가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남산을 둘러싼 동네가 철로와 고가도로로 동서와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남산을 중심으로 북쪽의 재래시장을 제외하고 모든 동네가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서 종단의 경부선보다는 남북 횡단의 고가도로가 단절을 시켜버린 남북의 동네 노후화는 심각했고 특히 남쪽 동네의 정도는 더 심해 폐허가 돼버린 빈집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남산 바로 아래 동네를 한 바퀴 돌다보면 유달리 '옥황상제', '도사', '선녀' 등의 단어가 들어간 울긋불긋한 간판들과 대나무 봉에 달린 붉은색과 흰색의 깃발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남산 바로 아래의 동네는 아예 집성촌처럼 모여 있습니다. 한때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사주, 타로 등과는 달리 '천궁부인', '용궁신녀', '태극신당'과 같이 중국의 무협영화에나 나올 법한 무림의 고수의 명칭들이 남산을 둘러싸고 있어 살짝 긴장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느 동네든 마찬가지로 노후화된 동네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떠나고, 어르신만 남는 동네는 노후화가 가속됩니다. 남산 주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남산에서 남쪽으로, 즉 가장 노후화된 곳을 바라보니 낯선 건축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서둘러 가까이 가보니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한 최신 트렌드의 건축물이었습니다. 이곳은 2021년 3월에 개관한 '남산도시재생 어르신일자리복지센터'라고 합니다. 천안시가 국토부의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선정돼 남산지구도시재생사업으로 건축했다고 합니다. 어르신, 일자리, 복지가 주는 보살핌과 따뜻함이 주는 진중의 용어는 직선을 자유로이 사용한 건축 디자인과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초현대적인 감각의 노출콘크리트와 유리로 구성된 직방체가 방향을 달리해 적층된 건축물입니다. 3층으로 구성된 건축물은 기다란 직방체 공간을 서로 90도 각도로 틀어가면서 올라가고 있습니다. 직방체의 돌출부분이 공간의 끝 부분이며, 오픈스페이스로 채광상태가 좋아지도록 크고 작은 다양한 외부공간을 돌출 배치해 각각 독립된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께 친숙한 디자인과 현대적 디자인의 감각적 차이를 채광으로 메우고 과감하지만 과하지 않은 직선 사용은 적절한 긴장감까지 불러일으켜 온유와 절제를 동시에 구현한 건축 디자인으로 느껴집니다.

1층은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카페와 공유부엌의 공간, 2층에는 일자리센터와 작업공간을 두고, 3층은 건강누리 공간 그리고 옥상정원으로 구성됐습니다. 야간에 건축물의 유리를 통과한 빛의 흐름은 어둡고 무거운 동네의 분위기를 밝고 환하게 반전시켜 버립니다. 거의 동시에 진행된 또 다른 남산지구도시재생사업인 천안천 어린이공원의 경관조명 또한 이 건축물을 돋보이도록 충실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과다한 현수막과 간판, 그리고 홈통의 방해가 없었다면 더욱 건축미를 발휘할 것 같은 건축물입니다. 잘 지은 건축물이 동네의 풍경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를 가까이서 만나게 되어 참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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