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군대]지구 중력 6배에 기절.. '파일럿' 되려면 거쳐야 하는 관문들
'인간 한계' 시험하는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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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뉴스1) 박응진 기자 = "정신 차리세요."
소리는 들리는데 앞이 깜깜했다. 중력 가속도가 높아져 잃었던 정신이 든 직후였다. 실제 전투기를 조종하고 있었다면 기체가 땅으로 곤두박질쳐 꼼짝 없이 목숨을 잃을 상황이었다. 의식을 회복한 기자는 고개가 꼬꾸라진 채 한참을 보낸 뒤에야 간신히 몸을 가눌 수 있었다.
기자는 지난 16일 충북 청주에 있는 공군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중력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G-Test) 체험에 참여했다. 이 훈련은 전투기 조종사가 급격한 기동시 발생하는 중력 가속도에 조종 중 의식을 잃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된다.
전투기 조종석 모양의 훈련 장비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자, 이내 장비가 큰 원형의 방을 빙글빙글 돌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탑승자에 가해지는 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중력 가속도가 점차 높아지자 속이 메스꺼워졌고 얼굴은 일그러졌다. 지구 중력(1G)의 6배에 해당하는 '6G'에 가까워질수록 시야가 좁아지는 '그레이 아웃'(Gray-Out)을 겪었다.
6G에 다다른 뒤 3초 정도가 지나자 결국 정신을 잃었다. 내시경 검사에 앞서 수면 마취를 할 때처럼 순식간에 의식을 상실했다. 얼마 뒤 의식은 돌아왔지만 수초 동안 몸이 떨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블랙 아웃'(Black-Out)을 경험하기도 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탑건: 매버릭'엔 전설의 파일럿 매버릭(톰 크루즈)이 훈련학교 교관으로서 훈련생들에게 "이번엔 기체와 신체 모두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전투기 조종사들은 공중전에서 기동회피, 추격전 등에 따른 급격한 중력 가속도의 변화에 맞서다 기절까지 할 수 있다. 온몸의 피가 하체로 쏠려 일시적으로 뇌에 혈액 공급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전투기 조종사가 비행 중 기절하면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높아진 중력 가속도에도 피가 머리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배와 허벅지, 종아리 근육에 힘을 주고 빠르게 호흡을 교차하는 'L1 호흡법'을 연습한다.
그레이·블랙 아웃 단계에서 L1 호흡법을 제대로 한다면 다시 시야를 넓혀 의식 상실이란 위급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공군 조종사들은 보통 지구 중력의 9배에 해당하는 9G에서 15초 이상을 버텨야 전투기에 탈 수 있다.
공간감각능력 상실도 전투기 조종사가 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표지판, 신호등, 거리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동차 운전과 달리 시각정보가 제한적인 하늘에서 인간의 감각은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전투기 기체가 뒤집혔는데도 정상 상태로 착각해 바다로 떨어지거나, 전투가 선회 중인데도 수평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오인해 추락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이처럼 기계 결함이 아니라 전투기 조종사의 비행착각에 따른 사고의 비중은 전체 사고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비행착각 훈련 장비에 탑승해 훈련교관 지시에 따라 고개를 돌려 각각 오른쪽, 왼쪽을 살펴본 기자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조종사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고개를 움직이지 않고 곁눈질로 주위를 살핀다. 기자는 고도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상승 속도가 느려지자 오히려 고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고공저압 훈련도 받는다. 고도가 높아져 저압·저산소 상태가 지속되면 판단능력이 떨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밀 타격과 공중전 등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경우 1만피트(약 3048m) 고도에 도달하면 눈앞이 흐려지고 판단능력이 저하된다. 기자도 훈련 중 이 상태에서 산소호흡기를 떼자마자 단순 곱셈 계산도 어려워지는 경험을 했다.
이 같은 상황이 길어지면 귀가 심하게 아픈 중이통이나 갑압증을 호소하게 된다. 또 혈액 중 질소가 기포 상태로 변해 심한 경우 생명이 위독해지기도 한다.
기자는 전투기 조종이 불가능한 경우에 대비하는 비상탈출 훈련도 체험해봤다. 사출 레버를 당기자 조종석과 함께 몸이 위로 순식간에 솟구쳤다. 어깨와 목에 힘을 줘 조종석에 머리를 밀착하지 않으면 목이 크게 흔들려 머리 부상을 입을 수 있다.
훈련 땐 사출 강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실제 비상탈출시엔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도 입는다고 한다. 엄청난 가속도 충격으로 인해 비상탈출에 성공해도 조종사 중 85%는 다친다.
공군사관생도들은 이런 훈련을 무사히 마쳐야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는 전투기 조종사로 거듭날 수 있다. 이미 조종사 자격을 갖춘 이들도 3년에 1차례씩 이곳을 찾아 훈련을 받아야 한다. 전투기 조종사들에겐 훈련을 포함한 모든 비행이 곧 '실전'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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