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표절
소설가 김경욱의 단편 ‘천년여왕’은 독창적인 작품을 써야 하는 작가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다룬다. 주인공은 소설을 다 쓰면 아내에게 먼저 보여주는데 늘 “남이 쓴 작품 베낀 것 같다”는 핀잔을 듣는다. 실제로 베껴서가 아니다. 엄청난 독서가인 아내는 기존 작품에서 유사성을 찾아내 “독창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주인공은 그런 아내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소설가든 화가든 음악가든 독창성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5년 인기 소설가 두 명이 동시에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한 작가는 일본 유명 작가의 단편을 베꼈다는 의혹이 일자 해당 단편을 자신의 작품 목록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표절을 흔쾌히 인정하지는 않았다. “문제가 된 작품을 읽은 것 같지 않다”고 했다가 “내 기억을 믿지 못하겠다”고도 했다. 애매한 해명이었다. 또 다른 작가도 처음엔 “혼자 동굴에 앉아서 완전한 창조를 한다고 해도 우연한 일치가 일어날 수 있다”며 부인했다가 추가 증거가 제시되고서야 “도용했다”고 고개 숙였다.
▶가요계도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몇 해 전 한 아이돌 그룹이 발표한 신곡이 일본 가수 것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다른 가수는 독일 그룹이 30년 전 발표한 곡과 거의 같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저작권을 해결하겠다”며 뒤늦게 독일까지 날아갔다. 두 사례 모두 표절인지 아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흐지부지 마무리돼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작곡가 유희열씨가 최근 발표한 피아노곡이 일본 저명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곡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런데 두 사람이 엊그제 주고받은 사과와 이해의 말들은 이전 표절 논란과 대비되는 품격을 보여줬다. 유희열은 사카모토에게 표절 의혹이 제기된 사실을 먼저 알리고 사과했다. 사카모토는 법적으로 다툴 뜻이 없다며 “내게도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며 많은 것을 배운 바흐나 드뷔시에게 강한 영향을 받은 몇몇 곡이 있다. 모든 창작물은 기존 예술의 영향을 받는다”고 유씨를 배려했다. 담백한 사과와 대가다운 포용을 주고받는 모습이 훈훈한 느낌마저 줬다.
▶ 그러나 아무리 좋게 매듭지어도 표절 논란에 말려들면 해명은 구차해지고 창작 의욕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2015년 표절 시비를 겪었던 작가는 4년이 흐른 뒤에야 새 작품을 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벼락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던 시절’ ‘누추해진 책상’이란 말로 그간의 심적 고통을 털어놓았다. 이번 일이 유씨에게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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