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美서 박수받은 러 연주자들

김성현 문화부 차장 2022. 6. 2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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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클라이번 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한 임윤찬. 왼쪽은 은메달 수상자인 러시아의 안나 게뉴셰네, 오른쪽은 동메달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의 3관왕 낭보로 막을 내린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잊기 어려운 장면은 더 있었다. 마지막 날인 19일(한국 시각) 폐막식이다. 최종 결선 진출자 6명 가운데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한 명, 러시아 연주자가 둘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감안할 때 아슬아슬한 긴장이 감돈 순간이었다. 이날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폐막식은 온라인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폐막식은 2013년 우승자인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바딤 콜로덴코(35)의 축하 연주로 시작됐다. 그가 연주한 곡은 우크라이나 국가였다. 콩쿠르의 결산인 폐막식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셈이다. 미국이 러시아 경제 제재에 앞장서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발 벗고 나서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런데 반전은 그 뒤에 찾아왔다. 폐막식에선 늘 그렇듯이 입상자 순위를 역순으로 호명한다. 먼저 특별상인 ‘모차르트 협주곡 연주상’ 수상자로 러시아 참가자 일리야 시무클러(27)의 이름이 불렸다. 하지만 관객 2000여 명 중 누구도 야유나 비난을 퍼붓지 않았다. 오히려 따스한 박수 갈채를 무대 위에 오르는 수상자에게 보냈다. 3위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28), 2위 러시아의 안나 게뉴셰네(31)의 이름이 불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참가자가 나란히 2·3위에 올랐지만 국적 때문에 비난 받는 일도, 더 박수를 받는 일도 없었다. 수상자들 역시 환한 미소로 서로 격려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콩쿠르도 정치와 완전히 무관할 순 없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역시 탄생 과정부터 지극히 정치적이었다. 냉전 당시인 1958년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당시 24세의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기 위해 이 대회는 창설됐다. 미국은 공산주의 심장부에서 거둔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대회를 만든 것이다. 만약 스탈린이 살아있던 5년 전이나 쿠바 미사일 위기가 터진 4년 뒤에 열렸다면 미국 피아니스트가 소련에서 우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반 클라이번 콩쿠르도 창설되지 않았을 것이고, 한국의 선우예권(2017년)과 임윤찬(2022년)이 우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국제 정치의 냉혹한 셈법과 예술의 자율성 사이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하며 피해국에 대한 지지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면서도 러시아 연주자 개인에게는 불이익을 주거나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선례가 됐다.예술 분야에서는 눈부신 개가를 올리지만 정치적으로는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갈등과 고심을 거듭하는 우리로서도 곱씹을 만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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