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국제신문 2022. 6.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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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문학관에 입주한 뒤로 새벽 다섯 시면 잠이 깬다. 다섯 시에 딱 맞춘 듯이 시작되는 새들의 지저귐 때문이다. 오늘은 새 소리가 아닌 빗소리에 잠이 깼다. 잠이 깨면 벌떡 일어나 창을 열고 극성맞게 울어대는 새를 찾아 나뭇가지를 훑는데, 오늘은 요를 깐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빗소리를 감상했다.

한창 직장에 다니며 바쁘게 살 때는 빗소리 새소리 따위 들리지도 않더니, 일을 때려치우고 나자 신기하게도 눈과 귀가 열렸다. 보고 듣고 느끼는 자연의 모든 존재가 그 자체의 특성과 매력으로 마음을 당겼다. 초여름에 보는 나무는 초록이 풍성해서 눈이 갔고, 잎을 털어낸 겨울나무는 헐벗은 삶을 견디는 수도사 같아 감동스러웠다. 손을 갖다 대기만 해도 떨어질 것 같은 꽃은 예쁘고 여려서 좋았다.

자연은 산이든 바위든 계곡이든 어느 하나를 좋아하게 되면 저절로 그 곁의 자연물, 또 그 곁의 모든 자연물까지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존재가 자연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내가 오늘 아침 산책을 나설 때 배웅해준 뽕나무만 해도 그렇다. 뽕나무는 저 홀로 서 있지만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굵직한 몸피를 데워주는 초여름의 햇살, 가지 사이를 지나며 이파리를 씻어주는 바람, 새벽녘 뿌리로 스며든 빗물, 뿌리의 숨통을 열어주는 지렁이가 뽕나무와 함께하고 있다. 뽕나무 묘목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뻗쳐 땅을 파고 들어가고, 몸피를 불리며 오디를 맺는 성장의 시간과 생명을 탄생시키고 유지하게 하는 우주 자연의 시간이 교차 교감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 자연의 쇼가 이렇게 가까이서 펼쳐지는 판에 무어 대단한 작업을 한답시고 내가 방에만 틀어박혀 있겠는가. 나는 틈만 나면 신발을 꿰신고 나서는데, 가문비나무와 전나무와 자작나무가 심어진 뒷길을 가로질러 나가면 5분도 안 돼 주천강이 나온다. 주천강로를 따라 그날그날 끌리는 대로 산길 하나를 잡아서 오른다. 죽을 둥 살 둥 허덕거리며 오르지는 않고, 자주 걸음을 멈추고 서서 숲의 향기와 풍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하늘을 가린 나무숲은 저 아래 인가에서 올라오는 개소리, 키다리 나무 꼭대기에서 튀어 오르는 새소리, 몸집 큰 동물이 무엇에 놀랐는지 후다닥 일어서다 철퍽 미끄러지는 소리, 나뭇잎을 쓸어내리는 바람 소리를 들려주고서 그래도 겁먹지 않는 내게 자리를 내어준다.

목을 타고 땀이 줄줄 흐를 때쯤 뜬금없이 농작물 밭을 만나기도 하고, 벌통을 나란히 세워둔 외딴집과 마주치기도 한다. 어제는 저 길로 가면 뭐가 있을까 생각만 하던 길로 들어섰다가 고개를 막 넘어선 곳에서 해안 절벽에 선 듯 시야가 훤히 트이는 장소를 발견했다. 탄성이 새어 나왔다. 주천강과 강림면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펼쳐진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정의 뷰팟이었다. 울창한 숲을 뒤에 두르고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한 이곳에 작은집 하나 지어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 눈에 좋은 게 남들 눈에 안 띄었을 리 있나. 사방을 둘러보니 띄엄띄엄 떨어져 앉은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들이 요란스럽지 않고, 산정 아래 비탈을 다져가며 나지막하게 엎드린 모양새다. 마을 사람들, 뭘 좀 아는 분들이다. 딱새 박새와 두더지와 고라니와 토끼처럼, 두꺼비 도롱뇽처럼 산속에 얌전히 깃들어 살겠다는 마음이 없고서는 저리 소박하게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책의 마무리는 으아리꽃이 난간을 타고 올라온 휴게실에서 냉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누군가 마침 휴게실에 들르면 꽃 중의 꽃인 이야기꽃이 핀다. 산책이 자연의 소란을 즐긴 시간이라면, 마무리는 농반진반인 사람의 말들로 시끌시끌해지는 시간이다. 살랑거리는 미풍과 한번 붙어보자는 듯 노려보는 다람쥐와 댄서의 스텝을 밟는 작은 새도 웃음을 주지만, 삶의 피로를 씻어내는 웃음을 서로에게 안기는 데는 사람이라는, 또 다른 자연의 존재가 제일이다. 하늘과 땅, 우주 만물 속에서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니.

안지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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