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순봉의 음악이야기] 보병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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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달 6월을 맞아 기억해야 할 우리의 음악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서양음악사에서나 나올 법한 이 극적인 이야기는 그 후기가 또 있다.
우리의 클래식 음악계에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호국의 달을 맞아 부산의 시인과 작곡가가 만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음악 '보병과 더불어'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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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달 6월을 맞아 기억해야 할 우리의 음악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6·25 당시 시인 유치환은 북진하는 보병3사단에 종군기자로 지원한다. 시인은 전쟁의 참상을 지켜보며 그 소감을 시로 남겼고, 이때 쓴 시를 묶어서 1951년 ‘보병과 더불어’란 시집을 발간한다. 다음 해 작곡가 이상근(1922~2000)은 이 시집에서 네 편을 발췌해 칸타타 ‘보병과 더불어’를 작곡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초연을 위해 당시 고려교향악단 지휘자였던 김생려에게 악보가 넘겨졌고, 어수선한 전쟁의 와중에 그만 이 악보는 분실되고 말았다. 생전에 이상근 선생은 이 악보의 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54년이 지난 후 2006년 이 악보가 어떤 고문서 수집가에게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이 곡의 범상치 않음을 알아본 이 수집가는 작곡가의 고향인 경남 진주시에 연락했고 드디어 이 작품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그리고 관계자들이 착실한 준비 끝에 그해 6월 진주와 부산에서 드디어 역사적인 초연이 있었다. 서양음악사에서나 나올 법한 이 극적인 이야기는 그 후기가 또 있다. 이 작품이 전쟁 중에 작곡된 유일한 대규모 음악작품으로서 그 예술적 가치와 한국전쟁 사료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인정받아 2020년 8월 12일 음악작품으론 처음으로 문화재청이 지정하는 국가등록문화재 791호로 확정된 것이다. 우리의 클래식 음악계에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애국심에 불탄 시인과 작곡가가 만난 이 작품은 결국 역사에 기록될 운명이었던가. 어긋났던 거대한 운명의 톱니바퀴가 이제야 맞춰진 느낌이다. 이상근은 진주 출신으로 진주와 마산을 거쳐 윤이상의 후임으로 부산고 음악교사로 오게 된다. 이후 여러 대학을 거치며 부산대 예술대학 학장으로 퇴임했다. 대한민국 작곡상과 예술원상을 받았으며 윤이상 나운영 등과 함께 2세대 한국 작곡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음악기자 이장직은 “KBS교향악단에서 한국작곡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이 연주된 작곡가”라고 말하고, 음악학자 김원명은 “이상근에 버금가는 음악인이 언제 다시 부산에 나타날지 아무도 기약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부산과 대구에서 제자를 키우면서 소위 영남악파의 태두로 여겨진다. 주요 작품에는 교향곡 6곡이 있다. 특히 부산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는 부산시 개항 100주년 기념 칸타타 ‘분노의 물결’과 1986 서울아시안게임 축하곡으로 1992년 부산포 승전 400주년 때 재연된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이 있다.
올해는 마침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8세에 작곡한 첫 작품 가곡 ‘해곡’이 문교부 공모에 당선돼 음악교과서에 실리면서 작곡가의 길을 가게 된 이상근은 이후 일본과 미국 유학을 통해 배운 서구의 현대음악과 기법을 최일선에서 도입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목표는 한국음악의 세계화였다. 평생 한국의 전통과 서구의 음악기법을 융합하는 데 천착했다. 그의 음악정신은 제자들로 구성된 작곡동인 향신회를 중심으로 지금도 이어지며, 특히 고향 진주에서는 이상근 국제음악제를 통해 그의 음악이 잊혀지지 않고 있어 다행이다. 호국의 달을 맞아 부산의 시인과 작곡가가 만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음악 ‘보병과 더불어’를 소개했다.
“어젯밤 어둠이 밀려든 고을을 버리고 오늘도 또다시 가야만 하노니 닭도 울기 전 오전 세시 새벽달 은갈구리 서슬 푸르른 아래…고요히 북신의 가르키는 쪽 원수의 뒤를 쫓아 나아가노니….”(보병과 더불어 중 ‘전진’)
하순봉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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