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풍채를 키웁시다

김겨울, ‘아무튼, 피아노’ 저자·북튜버 2022. 6. 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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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는 온갖 ‘돌려깎기’ 영상과 정보가 있다. 이를테면 팔뚝 돌려깎기, 허벅지 돌려깎기 같은 것들이다. 그걸 하려면 정말이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땀을 흘려야 한다. 그래야 살이 빠진다. 거기에 턱을 돌려깎고 광대를 돌려깎기까지 마치면 깎고 깎인 가느다란 몸이 된다. 하도 뭘 자꾸 깎으라고 해서 이제는 ‘깎’이라는 글자가 ‘꺅’이라는 비명 내지는 둥근 곡선을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심사관처럼 보일 지경이다.

물리적으로 차지하는 부피가 줄어드는 것을 아름답다고 예찬하는 세상에서 이를 악물어가며 비로소 작은 몸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무엇을 잃고 있는 것일까. 김하나 작가와 황선우 작가는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에서 ‘풍채(風采)’라는 단어의 힘을 이야기했다. 듣다가 무릎을 쳤다. 우리는 작아지려고 노력하는 동안 풍채로부터 멀어지고 있구나. 풍채는 거대한 몸과 동의어가 아니며, 자기 존재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끝없이 검열하는 사람에게 쓰는 단어도 아니다. 몸과 얼굴을 조각내서 정육점의 고기처럼 부위별로 평가하고 비교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쓸 단어 또한 아닐 테다. 온전히 자기 자신인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빛. 물리적인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사람의 자신감. 어떤 모양이든 내가 여기에 있다는 당당함. 그것을 풍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년에 나이키 트레이닝 앱으로 운동을 하다가 들은 여성 트레이너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트레이너는 이 운동을 하면 배가 납작해지고 허벅지가 줄어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코어를 기르면 더 무거운 짐을 나를 수 있고, 더 활력을 얻을 수 있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일을 잘하기 위해 잘 걷는 다리와 단단한 코어와 튼튼한 팔이 필요하다. ‘욕망받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내 한구석에 지겹게 자리 잡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초여름의 지금,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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