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대통령 ‘인생 책’이 말하는 인플레 해법
새 정부 ‘추경 62조원’ 엇박자… 이제 ‘임금·물가 악순환’ 막아야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인생 책’으로 꼽았다. 청년 시절 경제학 교수 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은 이 책을 “27년간 끼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뒤, 인생 책에서 제시한 인플레이션 해법은 따르지 않고 있다.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통화적 현상이며, 인플레이션을 치유하는 유일한 해법은 통화 증가율을 둔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첫 비서관 회의에서 “물가가 제일 문제”라면서 원인 분석과 대책을 주문했다.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 원인이 정부의 방만한 재정 지출과 그로 인한 통화량 팽창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 근저에는 포퓰리즘이 도사리고 있다고 봤다.
문재인 정부가 재정을 화수분처럼 쓴 탓에 통화량(M2 기준)이 1년 전에 비해 320조원이나 불어나 통화발 인플레 압력이 높아졌다. 여기에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 쇼크가 겹친 것이 인플레의 주 원인이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리며 통화 긴축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윤 정부는 재정 긴축으로 보조를 맞추기는커녕 사상 최대인 62조원 규모 추경으로 돈을 더 뿌렸다. 프리드먼이 봤다면 황당해하며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을 알코올 중독에 비유했다. 알코올 중독 환자가 금단 증세를 피하려 점점 더 많은 알코올에 의존하듯이, 재정 중독에 빠지면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 치유법은 금주(禁酒)밖에 없듯이, 인플레이션 해결은 통화 긴축밖에 없다고 했다. 프리드먼은 “성장률 추락, 고실업을 겪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종식된 사례는 역사에서 찾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재난지원금 5조달러(약 6400조원)를 뿌려 인플레를 자초한 미국 정부는 늦은 감은 있지만 프리드먼 처방대로 쌍끌이 통화 긴축에 나서고 있다. 연내에 기준금리를 3~4%까지 올리고, 시중 유동성 5225억달러(약 670조원)를 거둬들일 계획이다. 한국도 환율 방어와 외국인 투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선 금리를 따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 철학에서 프리드먼과 대척점에 섰던 케인지언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도 인플레이션 대응법은 프리드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물가를 1% 낮추려면 GDP(국내총생산)의 4%를 포기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는 목표를 집요하게 추구해 ‘미래의 물가가 낮아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물가가 잡힌다”고 했다. 물가 기대 심리가 자기 실현적 예언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간파한 처방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서울대 교수 시절 쓴 ‘경제학 원론’에서 “통화 증가율을 급격히 줄이는 ‘급랭 정책’이 인플레 심리를 잡아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윤 정부가 인플레 대응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만큼 더 심한 금단(禁斷) 후유증을 각오해야 할 상황이다. 정부는 사정이 급하다고 직접적인 가격 통제를 남발해선 안 된다. 유류세, 관세 인하 같은 가격 통제 정책은 수요 둔화를 방해해 인플레 기간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기료도 계속 묶어둘 게 아니라 적정선으로 올려 전기 소비를 줄이려는 동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취약 계층 생계비 지원, 소비 쿠폰 지급 등이 충격 완화 대안이 될 수 있다.
지금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야 할 과제는 ‘임금·물가 악순환’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가 불발되는 등 임금 고삐를 죄는 데 벌써부터 실패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앞날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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