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도 '창업' 꿈꾸는 실리콘밸리..스타트업 성공 돕는 '이 남자' [황정수의 인(人)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지원 전도사
K데모데이, 엑셀러레이팅 등
연 9개 지원 사업 운영
한국계 투자 기관과 협업
'KIB' 모임 조직해 활동
"한국과 미국의 혁신 연결할 것"
"유명 한식당에 들어가서 박사님 또는 대표님을 부르면 전부 다 돌아본다." 실리콘밸리 한국인들 사이에서 도는 우스갯소리 소리 중 하나다. 그만큼 실리콘밸리에 돈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최근 박용민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장을 만나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에 대해 물었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인들이 가장 많이 의지하는 KOTRA , 그 중에서도 실리콘밸리무역관을 맡고 있는 만큼 성공한 창업가나 벤처캐피털리스트을 자주 접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박 관장이 꼽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 코드는 '유머'다 "대부분은 유쾌하고 재밌더라고요. 만나서 얘기해보면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그의 분석은 더 재밌다.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그 분야를 재밌게 생각하고 즐겨야하겠죠. 그 과정에서 창의성이 나오고요. 즐기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대할 때도 유쾌한 태도를 갖는 것 같습니다."
요즘 박 관장이 꽂혀있는 건 '재밌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찾아내고 지원하는 것이다. 한 해 무역관이 신경 쓰는 스타트업 지원 사업만 총 9개. 지난해에만 230여개 스타트업이 KOTRA의 도움을 받았다. 실리콘밸리에선 "KOTRA의 스타트업 지원 사업이 상당히 체계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최근 박 관장은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한국계 투자기관 관계자들과 함께 'KIB(코리아이노베이션브릿지)'란 비공식 모임도 조직했다. 한국계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좀 더 내실화하기 위해서다. 그는 "KIB란 모임명엔 '한국과 미국의 혁신을 연결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며 "KOTRA 차원을 넘어 한국계 투자자들이 힘을 합치면 유망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계 투자기관과 함께 'KIB' 모임 발족..."한국 스타트업 지원"
지금(현지시간 16일) 무역관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네요
"한국 중견기업들과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기술 기업, 현지 기업 등을 연결하는 행사입니다. 현지 인수합병(M&A) 부티크(중개 전문 업체)가 주관을 하고 코트라는 후원사를 맡았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VC가 아닌 M&A 부티크가 참여하는 행사라는 점이 독특합니다
"최신 기술 투자에 관심이 많은 한국 중견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업형벤처캐피털(CVC)이 없는 곳이 많죠. 미국에서도 회사를 물려주기보다는 팔고자 하는 기업들의 수요가 있고요. 이를 연결해주는 겁니다. 코트라, 한국과 미국 기업의 네트워크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관련 코트라 행사가 많아졌습니다
"총 9개 정도입니다. 엑셀러레이팅(멘토링) 프로그램 4개, 투자유치 지원사업(데모데이) 2회, 전시회 참가지원2, CVC 오픈 이노베이션 지원사업(연중)등 입니다."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로 연결돼야할텐데요
"현재 현지 투자자들과 KOTRA 데모데이(K데모데이)에 참가한 스타트업 간의 투자 논의가 활발합니다.
한국계 금융기관들도 코트라와 연계한 투자에 적극적이라고요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금융기관(회사) 관계자들과 비공식모임인 'KIB(코리아이노베이션브릿지스)'를 만들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혁신을 연결하겠다는 의미입니다. K데모데이에 KIB 모임에 속해있는 금융사 뿐만 아니라 이들이 알고 있는 벤처캐피털(VC)과 스타트업 등도 함께 참여합니다."
한국벤처투자와도 하반기에 함께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지난 5월 반도체 장비관련 글로벌 기업 CVC와 함께 한 번 진행했습니다. 하반기에 2~3번 더 개최할 예정입니다."
반도체, 미래차 관련 스타트업과 현지 투자자 연결에 주력
어떤 분야의 스타트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해야할까요
"반도체, 미래차, 바이오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꼽은 '스타트업 빅3'입니다. 이 방향이 맞다고 봅니다."
반도체, 미래차, 바이오는 이미 투자가 활발한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활발하지 않습니다. 하드웨어가 가미된 스타트업은 약합니다. 요즘 유니콘에 등극했거나 이름을 날리고 있는 스타트업들 보세요. 대부분 기업용 소프트웨어와 관련돼있죠. 저는 하드웨어가 가미된, 제조업과 연관된 스타트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 빅3 분야 스타트업 대상 투자를 어떤 식으로 유도할 계획입니까
"한국계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들이 실리콘밸리 진출에 관심이 많습니다. 오는 7월께 팹리스 스타트업들의 수요를 파악하고 개별적으로 실리콘밸리 CVC 등과 연결할 계획입니다."
미래차 관련해서도 관장님의 계획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1차 밴더들은 전기차 부품으로의 사업 전환에 관심이 많습니다. 당연히 기술 투자에도 적극적이죠. 실리콘밸리, 디트로이트, 토론토 무역관이 힘을 합쳐 북미오토테크(가칭)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배터리, 자율주행, 전장(전기전자장비) 부품 등 3가지 파트가 중심입니다."
"킥스타터, 인디고고 등 미국 크라우드펀딩업체와 한국 스타트업 연결"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특히 큰 것 같습니다
"2년 전 실리콘밸리 무역관장으로 부임했을 때 '코트라가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체계적이고 정형화된 프로세스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타트업이 요청하면 지원을 하는데 수동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고 유관기업, 현지 VC와 협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년에 얼마나 많은 스타트업을 지원하시나요
"2021년 기준 230개 정도 됩니다."
크라우드펀딩 관련해선 무역관이 직접 뛴다고요
"네, 미국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크라우드펀딩 1위 업체는 뉴욕에 있는 '킥스타터', 2위가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하는 '인디고고' 입니다. 한국 스타트업들은 국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성공하고 미국 크라우드펀딩에 도전합니다."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크라우드펀딩에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미국 크라우드펀딩 업체는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아서 보관하고 있다가 스타트업이 제품을 발송하면 자금을 전달하는 식입니다. 현지에 법인이 있어야하고 당연히 계좌도 필요합니다. 킥스타터는 여기에 더해서 영주권자의 SSN(소셜시큐리티넘버, 한국의 주민번호와 비슷한 개념)을 요구합니다. 이 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코트라 실리콘밸리무역관이 지원합니다."
SSN 요구는 결국 미국인 직원 채용을 요구하는건데,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살펴보니까 킥스타터가 EU와 일본 기업에는 SSN을 요구하지 않더라고요. 지난해 킥스타터에 '한국기업들도 EU, 일본 못지않게 신뢰도가 높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킥스타터가 '2021년과 2022년에 무역관이 보증하는 기업에 한해 SSN 대신 코트라의 코드번호를 넣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크라우드펀딩 지원 관련해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요
"무역관의 지원을 받아서 미국의 크라우드펀딩업체를 활용한 스타트업이 23개입니다. 이 중 10개 이상은 자금조달에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력회복용 눈 운동기 업체 '에덴룩스', 콧털정리기 '로얄금속공업'이 대표적입니다. 업계에선 이 스타트업들이 10만달러 정도를 조달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한국 전용관을 개설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요
"한국 스타트업들을 모아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한국관'을 만들면 더욱 잘 노출이 되겠죠. 인디고고는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킥스타터와도 협의 중입니다. "
누구나 창업을 꿈꾸는 실리콘밸리 "개방적 혁신 문화 배워야"
다양한 국가에서 근무하셨을텐데요, 실리콘밸리만의 차별점 같은 걸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람 인생이 '살고 사랑하고 배우는 것'이란 말이 있죠. 여기 사람들은 '살고 사랑하고 배우고 창업합니다'. 아파트에서 도어대시(미국 배달전문 업체) 배달원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지금은 배달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누구나 창업을 꿈꾼다는 이야기군요
"네.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택시를 타면 '지금은 차를 몰고 있지만 나중엔 배우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선 '실리콘밸리를 배워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뭘 배워야할까요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인을 저는 인적자원, 자본, 인프라, 문화로 봅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게 인력과 문화입니다."
왜 가장 중요하죠
"실리콘밸리는 수평적인 협업 구조와 개방형 혁신 문화가 발달돼있습니다. 직위는 대부분 '매니저와 팀원'으로 단순합니다. 이직도 많고요. 젊은이들은 창업을 꿈꿉니다. 한국은 어떤까요. 부장-차장-과장-대리-사원으로 계층구조가 있고 포지션이 정해지죠. 혁신과 이직이 쉽지 않습니다."
실리콘밸리 문화가 한국에 쉽게 도입될까요
"한국 대기업에서 공채가 없어지고 있죠. 이게 시발점이 될 겁니다."
무역관에도 개방적 혁신과 수평적 협업 문화를 도입하셨을 것 같습니다
"개방적 혁신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이질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 수평적 협업은 서열 문화를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리콘밸리 무역관에선 마케팅 1팀장은 현지 채용 직원인 글로벌 스텝, 2팀장은 본사 파견 직원이 맡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는 북미 지역 코트라 무역관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부관장으로 글로벌스텝을 임명한 곳도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재밌다"
한국계 VC나 기업들의 진출이 최근 활발해지고 있죠
"사례를 하나 말씀드릴게요. 한 라운드에 4억달러 정도를 투자하는 현지 VC가 최근 한국투자 전용 펀드를 만들었습니다. 한국계 공동 창업자가 펀드 운용을 맡았고요. 투자 규모만 2억달러에 달합니다. 과거에 비해서 미국 주류 사회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한국 문화가 널리 알려진 영향이 크겠죠
"BTS를 중심으로 한국 문화가 알려지니까 관심이 커졌고요. 몰로코 샌드버드 같은 유니콘 기업들이 많이 나온 영향이 큽니다. 최근 한 한국계 VC가 펀드를 만들었는데 외국계 자금이 많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한국계 스타트업에 대한 성장가능성을 높게 보고 많이 투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보실텐데요. 무엇이 다른가요
"실리콘밸리에선 학벌과 돈 자랑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죠. 그만큼 똑똑하고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분위기가 우울하지 않고 재밌습니다. 말도 잘하고 유머도 있고 자신감도 있고 뭔가 이야기할 때 농담도 하려고 하고요."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재밌는 이유가 있을까요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그 분야를 재밌게 생각하고 즐겨야하겠죠. 그 과정에서 창의성이 나오고요. 즐기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대할 때도 유쾌한 태도를 갖는 것 같습니다. 협업하고 나누는 걸 좋아하고요. 성공한 사람들 보면 재미없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재밌는 포인트들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실리콘밸리에 오기 전까지 창업이나 스타트업에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곳에서 창업이나 스타트업에 대해 많이 느끼고 배웠습니다. 은퇴 이후엔 개발도상국에 가서 산업 전문가 멘토도 하고 싶은데요. 그것 말고 한국 대학에 창업원들이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경험한 분들이 많지 않죠. 그 곳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경험을 전하는 '멘토링'을 하고 싶습니다."
실리콘밸리=황정수/서기열 특파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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