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76] 오즈의 마법사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2022. 6. 2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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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형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진시황이다. 도(度)는 길이, 량(量)은 부피, 형(衡)은 무게를 말한다. 진시황은 금형(金衡) 즉, 돈의 무게에 관한 규칙을 만들 때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을 1대10으로 정했다.

서양은 달랐다. 은광이 없었던 고대 이집트에서는 금과 은을 1대 1로 교환했다. 구약성경에서 “은과 금”이 60회, “금과 은”은 32회 등장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금이 아닌 은이 귀금속을 대표했다는 증거다. 그런데 4세기를 지나면서 서양에서도 금이 은을 추월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과 은의 비율이 1대13 정도로 굳어졌다.

금광을 잔뜩 기대하고 신대륙에 도착한 스페인은 포토시(현재 볼리비아)에서 지상 최대 은광을 발견했다. 은 공급이 급증하면서 가치가 하락했다. 미국이 독립할 때쯤 금과 은 비율이 1대15를 돌파하고, 독일이 통일한 뒤에는 1대16까지 뚫었다.

사태가 그쯤 되자 은광이 몰려 있는 미국 서부 지역 주민들이 위기감을 느꼈다. 연방정부가 은을 매입해서라도 가격을 지탱하라고 압박했다. 1896년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서부 출신 민주당 후보 윌리엄 브라이언이 1대16 비율 유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때 탄생한 것이 ‘오즈의 마법사’다. 토네이도를 만나 집을 잃은 소녀 도러시가 고향을 찾아가는 모험을 그린 동화다. 마법사가 알려준 대로 은색 구두 뒤꿈치를 맞부딪침으로써 도러시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은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미국 사회가 토네이도(정치적 혼란) 이전으로 복귀하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즈(Oz)는 무게 단위 온스를 말한다.

이토록 정치적 복선이 치밀하게 깔린 오즈의 마법사가 동화로 둔갑한 것은, 같은 이름의 영화(1939년) 때문이다. 그 영화에서 도러시를 연기하여 국민 여동생이 되었던 주디 갈런드가 1969년 오늘 사망했다. 그녀가 없는 지금, 금과 은의 비율은 1대80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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