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우주개발 시대 활짝]누리호는 '이들' 꿈도 함께 싣고 날았다
“끊임없이 풀기 어려운 숙제를 내며 10년간 동고동락했던 친구입니다. 우리 힘으로 만든 발사체 발사 성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뿌듯함을 줍니다. 1차 발사 후 의기소침하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었습니다.”
누리호 개발의 주역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 연구진과 참여한 국내기업 300여개 소속 500여명의 엔지니어들은 누리호 발사 성공에 감격하며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약 37만개에 달하는 누리호 부품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제작했다. 지난해 10월 1차 발사시 3단 엔진 산화제 탱크 문제로 성공 문턱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지만 발빠른 분석과 협업으로 8개월만에 2차 발사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협력과 경험은 누리호 개발로 확보한 발사체 기술의 민간기업 이전을 원활하게 해 우주산업 생태계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 매 순간이 위기...누리호 개발의 주역들
누리호 개발 주역인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 인력은 약 250명이다. 5개 부서와 16개 팀으로 구성돼있다. 연구자들에게는 매 순간이 위기였다. 그 중에서도 누리호 1단과 2단을 구성하는 주력 엔진 75t급 액체엔진 개발은 험난한 과정을 겪었다. 75t급 엔진은 개발 초기 기능과 성능에 집중한 나머지 목표 대비 25% 무겁게 설계됐지만 연소시험 등을 반복적으로 진행하며 데이터 축적과 무게 감량을 위한 설계 개선, 경량 소재 적용 등을 통해 최종 설계 기준에 맞게 무게를 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소 불안정 문제 해결은 난제였다. 발사체엔진개발부 연소기팀은 누적 연소시험 시간 1만8290초(2022년 1월 기준)를 수행했다. 지상 및 고공 모사 환경에서 총 184회 연소시험을 진행하며 연소 불안정을 해결했다. 2007년부터 엔진 연구를 시작한 한영민 발사체엔진개발부장은 “개발한 액체엔진의 성능을 검증할 시험 설비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누리호의 심장인 75t급 액체엔진 연소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엔진에 투입되는 연료와 산화제(추진제)를 충전하는 추진제 탱크도 난제다. 최대 높이 10m, 최대 직경 3.5m 크기의 탱크 내부에 대기압의 4~6배의 압력이 작용하는 가운데 비행 중 가해지는 관성력과 하중,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동시에 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소 두께 2mm로 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광수 발사체구조팀장은 “추진제 탱크는 설계도면이 있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며 “최적의 공정을 찾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공정을 개발하는 데 최대 1년 가량 소요됐다”고 밝혔다.
순수 국내 독자 기술로 구축한 제2발사대도 빼놓을 수 없다. 발사체를 개발해도 발사대 기술이 없으면 발사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강선일 발사대팀장은 “13명의 연구자와 현대중공업 등 협력기업까지 더하면 60여명이 발사대를 개발, 구축했다”며 “발사체 엔진 연소가 시작하면 최대 추력인 300t을 낼때까지 발사체를 붙잡고 있다가 정밀하게 발사체 고정을 해제하는 지상고정장치를 개발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밝혔다. 지상고정장치 기술은 나로호 발사 때는 없었던 기술이다.
● 총사업비 80% 집행한 300개 기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누리호 개발 사업에 국내 기업 약 300개가 참여했다. 누리호 전체 사업비의 80%에 해당하는 1조 5000억원이 이들 기업에 집행됐다. 구조와 엔진, 시험설비, 추진기관, 제어 분야 등 전 부문 개발에 함께 했다.
누리호 27만 개 부품 총조립을 맡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75t급 액체엔진 개발을 맡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대표적이다. 이창한 KAI 우주사업팀장은 “연구소가 지금까지 요소기술을 축적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를 안보나 경제 분야에서 상업성을 갖추도록 확장하는 DNA는 산업체가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추진기관생산기술팀 차장은 “전 국민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우주 분야에 주목하는 상황에서 한화도 우주산업에 사명감을 가지고 대표적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로템은 추진기관시스템 시험설비와 추진공급계 시험설비 구축을 주도했고 현대중공업은 누리호를 쏘아올릴 발사대 개발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대기업 외에도 추진제 탱크 유지하는 헬륨 고압탱크 공급하는 이노컴, 누리호 동체 만드는 한국화이바, 터보펌프 개발의 주역 중 하나인 에스엔에이치, 누리호 전자장비 이어주는 와이어 하네스개발 기업 카프마이크로, 누리호 전자탑재시스템 개발한 단암시스템즈, 누리호 탑재 카메리시스템 개발한 기가알에프, 누리호 시험설비 유지보수 기업 한양이엔지, 누리호 위성항법수신기를 개발한 덕산넵코어스, 누리호 밸브를 만든 하이록코리아, 누리호 단열재를 개발한 위즈텍, 지상제어시스템을 개발한 유콘시스템 등 수많은 우주 분야 중소기업도 사업에 참여했다.
[김민수 기자 r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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