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과로사 막자" 사회적 합의 1년..여전히 막지 못했다
합의와 달리 까대기 투입 주장도..보상·재발방지 요구
산재 협조 밝힌 사측은 "주당 55시간 근무" 과로사 부인
택배사 CJ대한통운의 대리점에서 일하던 택배노동자가 뇌출혈로 사망했다.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해 6월 정부·여당·택배사·택배노조 등이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올해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갔지만, 택배노동자 또 한 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21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 부평의 CJ대한통운 대리점에서 택배기사로 근무하던 전모씨(48)가 지난 16일 새벽 사망했다고 밝혔다. 전씨는 지난 14일 오전 5시30분쯤 집에서 출근을 준비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뇌출혈이 심해 끝내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대책위는 전씨 가족과 동료 등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해보면 전씨의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이 70시간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과로사로 규정했다.
대책위는 전씨가 통상 오전 6시쯤 출근해 오후 9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고, 하루 250여개 물품을 배송했다고 밝혔다.
물량이 많아 당일 배송하지 못한 물건은 다음날 출근하면서 배송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초 사회적 합의에서는 택배 분류작업에 별도 인력을 투입해 택배기사의 업무강도를 낮추기로 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정황도 발견됐다. 대책위에 따르면, 전씨가 근무하던 대리점에서 분류인력은 작업이 원래 시작돼야 하는 오전 7시보다 한 시간 늦은 오전 8시부터 투입됐고, 이들은 낮 12시~오후 1시에는 퇴근했다. 이 때문에 분류인력이 없는 시간에는 노동자들이 2명씩 ‘까대기조’가 되어 분류작업을 했다.
대책위는 또 전씨가 일했던 터미널은 고가 다리 밑에 있어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고, 물품이 있는 레일 앞에 차량을 대지 못하게 돼있어 택배노동자가 레일에서 멀리 떨어진 차량까지 직접 오가며 물건을 실어야 하는 등 노동환경이 매우 열악했다고 설명했다.
대책위는 CJ대한통운이 유족에게 사과하고 응당한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대책위는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 지 1년이 지났지만 택배노동자는 여전히 하루 12~13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며 “CJ대한통운이 더 이상 죽음의 기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CJ대한통운은 전씨 사망에 대해 “산재 신청 시 관련 절차에 적극 협조하는 것은 물론 유가족분들께 가능한 부분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CJ대한통운은 “고인의 하루 배송물량은 223개로 동일 대리점 택배기사 평균 268개보다 17% 적고, 주당 작업시간은 55시간 안팎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전씨 사망이 과로사가 아닐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대책위의) 근거 없는 사실왜곡과 무책임한 주장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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