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고위직 인사·예산 틀어쥐고 '정권 예속기관' 만드나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박하얀 기자 2022. 6. 2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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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국수본부장 제청·징계요구권 행안부 장관에 부여
정부조직법 개정 없이 시행령으로 '경찰국 신설' 위법 소지
"법치 아닌 명령으로 지배되는 국가" 경찰 안팎 비판 쏟아져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경찰국 신설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지시로 출범한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자문위)가 사실상 31년 만의 ‘경찰국’ 부활을 선언했다. 경찰 안팎에선 내무부가 치안본부를 통해 경찰을 직접 통제한 군사독재 시절이 연상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취임하자마자 자문위를 구성해 경찰에 대한 통제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한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고, 한창섭 행안부 차관이 자문위 공동위원장이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 고위직 인사권, 경찰에 대한 감찰·징계 등 권한을 틀어쥐는 내용의 시행규칙 제정 등 후속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 국가기관은 없다.” 황정근 공동 자문위원장은 2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권한이 커진 만큼 ‘민주적’ 방법으로 경찰을 통제하고 지휘할 수단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권고안의 핵심은 행안부 장관의 경찰 인사권 실질화다. 자문위는 경찰 고위직 인사 검증을 담당하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폐지됐으니 행안부가 경찰 고위직에 대한 인사 검증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권고안에는 경찰청장(치안총감)과 국가수사본부장(치안정감)에 대한 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검찰국을 통해 검찰을 통제하고 검찰총장추천위원회가 검찰총장 후보를 추천하는 법무부의 검찰청 지휘·감독 시스템을 그대로 차용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행안부 장관이 인사권을 고리로 경찰을 틀어쥘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고안에 따르면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경찰청장 등 고위직을 1차 검증하고 행안부 장관이 실질적으로 제청권을 행사하는 구조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정부가 인사권을 활용해 경찰을 직속기관처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권고안은 경찰청장을 포함한 일정 직급 이상의 고위직 경찰공무원의 징계요구권을 행안부 장관에게 부여했다. 행안부가 ‘부실 수사 감독’을 내세워 경찰 수사에 관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행안부 내에 과거 경찰국과 같은 경찰 지원조직을 신설하는 근거 규정이 될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 제정을 둘러싼 논란도 크다. 현재 정부조직법상 소속청이 설치된 10개 부처 중 기획재정부 등 7개 부처는 소속청 지휘 규칙이 제정돼 있으나 행안부와 해양수산부에는 없다는 것이 행안부와 자문위가 내세우는 지휘 규칙 제정 명분이다.

위법의 소지도 있다. 이창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 검찰·경찰개혁소위원회 위원장은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에 대한 인사권을 부여하고 경찰청장의 지휘권을 부여하는 것은 경찰을 정치권력에 예속하는 수단일 뿐”이라며 “특히 상위 법령인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지 않고,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행안부 산하 경찰국으로 경찰권을 부여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문위 권고안에는 수사권 확대에 따른 적정 인력 확충, 직급보다 업무능력에 따라 직위를 부여하는 복수직급제 도입, 일반 출신(순경 등)의 고위직 승진 확대 등 경찰 일선의 반발을 잠재울 ‘당근책’도 담겼다. 그러나 이마저도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한참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이번 권고안은 법무부는 한동훈 장관, 행안부는 이상민 장관 주도하에 검찰과 경찰을 확실히 틀어잡기 위한 ‘길들이기’라고 총평할 수 있다”면서 “대선 기간엔 ‘경찰청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겠다, 경찰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 공약했는데, 이러한 공약은 추진되지 않고 행안부의 일개 국이 경찰을 통제·관리하게 만들었다. 경찰 내부가 들끓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유진·유경선·박하얀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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