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 연구용역' 놓고 정면충돌(종합)
노동계, 내년 최저임금 1만890원 요구..경영계 "폐업하라는 얘기"
(세종=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구분) 적용할지 결정하는 데 필요한 기초자료 연구를 정부에 의뢰할지를 놓고 노사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노사 위원들은 2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업종별 구분 적용 연구 용역과 관련한 설전을 벌였다.
노사 양측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가운데 이날 회의는 공익위원들이 노동부에 연구 용역을 권고하는 선에서 끝이 났다.
공익위원들은 권고문에서 노동부에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정할 수 있는지 여부 및 방법, 생계비 적용 방법에 대한 심의에 필요한 기초자료 연구를 완료해 차년(2023년)도 최저임금 심의 요청일까지 최저임금위에 제출해달라"고 밝혔다.
이런 권고안은 노사 모두의 반발을 불렀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공익위원들의 권고안은 업종별 구분 적용을 통해 최저임금을 무력화하겠다는 정부에 들러리를 서는 것에 불과하다"며 "최저임금 제도의 목적과 취지에 충실해야 할 공익위원들이 양심을 버리고 윤석열 정부에 굴복한 것을 강력 규탄한다"고 말했다.
사용자위원들은 입장문에서 "공익위원들이 업종별 구분 적용을 위한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에 대해서는 바람직하게 평가한다"면서도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고 '권고'로 처리해 신뢰를 저버린 것에는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이미 논의가 끝난 업종별 구분 적용 안건에 대해 사용자단체 달래기용으로 안건 상정을 제안한 것은 대단히 독선적 행위"라며 "관행을 벗어난 최저임금위의 이 같은 운영에 심히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 총장은 "얼마 남지 않은 심의 기한 준수를 위해 불필요한 논의를 삼가고 생산적인 논의를 시작하기를 바란다"며 "이 같은 간곡한 요청에도 연구 안건 상정을 강행하면 올해 심의는 파행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최저임금위는 지난 16일 제4차 전원회의에서 업종별 구분 적용 여부를 표결에 부친 결과 내년에도 업종과 무관하게 단일 금액을 적용하기로 했다. 투표 결과는 반대 16표, 찬성 11표다.
이처럼 부결된 뒤 공익위원들이 업종별 구분 적용과 관련한 연구 용역을 하자고 제안해 5차 회의에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다른 근로자위원인 박희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가 제4차 전원회의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경제정책방향 회의에 참석한 것을 비판했다.
업종별 구분 적용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윤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 권 교수가 참석한 뒤 연구 용역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전문가로서 패널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간 것으로,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방향을 준비하고 논의하는 자리에도 여러 차례 갔다"며 "그날 최저임금 얘기는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매년 같은 논란이 반복돼 한 번쯤 논란을 매듭짓고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구분 적용이 가능한지, 불가능하면 왜 불가능한지, 현재 업종 구분이 제대로 된 것인지 등을 판단해보자는 취지에서 연구를 제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의 차등 적용을 도입해 숙박·음식업 등 임금 지급 능력이 부족한 업종에는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동계는 연구 용역의 과정을 거치면 2024년부터는 정부나 사용자 측 주장대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사용자위원들은 지난 회의에서 부결로 결론이 난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공익위원들의 제안대로 연구 용역 안건을 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오늘 회의에서는 의결 절차를 거쳐 연구 용역 안건이 최저임금위 건의문으로 반드시 채택돼야 한다"며 "내년이 업종별 구분 적용이 결정되는 원년이 될 수 있도록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공익위원들이 구분 적용과 관련한 심도 있는 연구를 정부에 제안한 것은 의미가 있다"며 "합의 처리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표결이라도 희망한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이날 내년도 최저임금의 최초 요구안으로 시간당 1만890원을 제시했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9천160원)보다 1천730원(18.9%) 많다.
다만, 노사가 전원회의에서 연구 용역 문제를 놓고 팽팽히 맞서면서 어느 쪽도 최초 요구안을 최저임금위에 제출하지는 않았다. 요구안을 공개한 노동계와 달리 경영계는 요구 수준을 공개하지도 않았다.
근로자위원들은 전원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요구안을 공개하면서 "최근 저성장 고물가의 경제위기 이후 미래 불평등 양극화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서 최저임금의 현실적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류 전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요구안"이라며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중고'와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악재'가 한꺼번에 몰아치는 상황에서 18.9% 인상하라는 것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폐업하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경영계는 연구 용역과 관련한 논의 결과를 보고 이날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을 제시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지난 16일 열린 제4차 전원회의가 자정을 넘어 끝나면서 차수가 변경돼 제5차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시 위원장이 정식으로 차수 변경을 선언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위는 지난 16∼17일 전원회의는 모두 제4차로 간주하고, 이날 회의를 제5차로 여기기로 했다.
제6차 전원회의는 오는 2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개최된다.
ksw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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