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수수료 밝혀라"..금융정책 '新관치' 시대 열렸나

김유진 기자 2022. 6. 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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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금융정책 사실상 1호..금감원장까지 나서
금융권 "소비자 보호 취지 이해..자율성 침해 우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스1.

윤석열 정부가 금융당국 고위직 인선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정책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하면서 금융계가 긴장하고 있다. 은행의 예금·대출금리를 비롯해 간편결제 수수료 조정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기다리고 있다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까지 직접 나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새로운 관치 금융 시대가 열린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과거 이명박 정부 당시 ‘공정’을 내세우며 원청업체와 하도급업체간 거래 규율을 다시 정하게 하는 등 보수 정부 특유의 ‘시장 바로 세우기’ 행보가 이어질 것이란 것이다. 금융권은 소비자 후생을 내세워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금리와 수수료는 결국 민간 금융회사의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21일 당국 및 금융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금리 상승 시기에 금융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함께 협력해나가야 한다”며 “취약계층의 부담을 덜어줄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전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전일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서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 간 차이)가 확대되면서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며 “취약 차주의 금리 조정 폭과 속도를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이 원장의 발언은 사실상 은행권에 과도한 이자 장사를 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출금리가 인상되면서 대출자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은행 스스로 예금금리 인상과 가산금리 조정을 통한 대출금리 인상 최소화를 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금융당국 수장의 얼개가 나온 상황에서 금리 조정이라는 발언이 나온 것은 금리 조정이 사실상 윤 정부의 1호 금융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금리 뿐만 아니라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 간편결제 서비스의 수수료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현재 금감원은 간편결제 서비스 수수료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행정지도 형태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수수료 공시를 추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수수료를 합리적인 근거에 따라 산출토록 하는 등 기본원칙을 제시하는 방안을 포함할 예정이다.

간편결제 수수료 공시는 간편결제 사업자가 영세·중소사업자에 과도한 수수료를 수취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점에서 정부가 간편결제 사업자에게 사실상 수수료 인하를 주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금융소비자와 취약차주 보호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가진 금융권이 공적인 부문에서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사에 요구하는 게 아니라 현재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은행이 중장기적으로 지속 성장하려면 국민들의 상황을 잘 보면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융사의 공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최근 정책금융 확대 과정에서 민간 금융사의 역할을 주문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금감원은 정부는 소상공인 저금리 대출전환 사업과 서민 안심 주택담보대출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은행의 역할 확대를 주문했다. 이 원장은 “정부 차원에서 서민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고금리대출을 저금리대출로 전환해주는 프로그램 등을 추진 중에 있으나, 지원 규모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은행도 이와 관련한 자체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은행권은 소상공인 저금리 대출 전환 사업 등과 관련해 부실 위험률이 높아 정부의 보증비율을 최대한 높여 은행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보증을 조건으로 ‘고통 분담’을 요구한 데 이어 자체적인 저금리 대출전환 프로그램까지 마련을 요구한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민간금융에 공적 책임을 강조함에 따라 금융권 일각에서는 사실상 ‘관치금융’이 시작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의 개입은 시장의 자율기능이 무너졌을 때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이뤄진다. 하지만 시장의 기능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금리와 수수료 조정에 대한 신호를 보내는 것 자체가 정부가 민간 영역에 개입하는 관치금융이라고 본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은 금융사의 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한 행위에 개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최근의 내용은 정부가 직접적으로 시장 가격에 개입하려는 성격이 있어 관치금융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에서는 새 정부의 움직임에 시장 자율성 보장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윤 정부의 인수위는 금융부문의 정책과제 목표로 “금융행정의 자의・재량 여지 축소 및 금융권 자율성과 책임원칙 구현”을 내세운 바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가계부채 관리하면서 정부의 지침에 따라 우대금리 축소 등 금리를 조정한 게 있는데 은행이 의도적으로 수익 때문에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처럼 평가하는 건 아쉬운 측면이 있다”며 “이번 정부에서 자율성이 확대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금감원장이 간담회에서 ‘자율적으로’, ‘자체적으로’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주문한 내용을 보면 과연 자율성이 확대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제시했던 공정이라는 잣대가 윤 정부 들어 시장에 적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납품단가도 올려 하도급 업체 등 중소기업의 경영 어려움을 해소하는 납품단가 연동제를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납품거래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 질서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반발이 커지며 제도 도입은 무산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라는 취지는 이해하고 동참할 테지만, 정부가 어떻게 시장 경제를 복원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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