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개선 방안에도 시큰둥한 시장.. "고맙긴 한데 큰 도움은 안돼요"

최온정 기자 2022. 6. 2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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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는 조합장 A씨는 21일 오전에 공개된 분양가상한제 개선방안을 확인한 뒤 “후분양으로 돌리길 잘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단지는 리모델링으로 30가구 이상 늘어나면서 분양가상한제 적용 대상이 되자, 택지비 인상분을 더 반영하기 위해 후분양으로 선회했던 곳이다. A씨는 “정부 개선안이 나오면 분양시점을 앞당길까 고민했는데, 큰 차이가 없는 만큼 기존 방침대로 가면 될 것 같다”면서 “정부가 분양가를 조금이나마 올릴 수 있도록 해줬지만 조합원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21일 분양가 상한제 및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선방안을 담은 ‘분양가 제도운영 합리화 방안’을 내놨다. 개선안에는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필수적으로 지출하는 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하고, 자잿값 상승분을 건축비에 반영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고분양가 심사제도 또한 비교대상 단지를 지은 지 10년 이내인 건물로 줄여 시세를 현실화하고, 자재비 가산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새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방안이지만, 부동산 시장에선 시큰둥한 모습이다. 사업장별로 분양가 상승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당장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정부 개선안을 기다리며 분양을 늦춘 단지의 경우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하반기에는 멈춰있던 물량이 다소 풀릴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도 나왔다.

◇ 분양가 1.5~4% 높이는 효과… “시세 제대로 반영 못해”

정비업계와 건설업계가 실망한 가장 큰 이유는 제도 개선으로 인한 분양가 상승폭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번 대책으로 정비사업이 진행되는 각 사업장의 분양가는 재개발의 경우 3.3㎡당 평균 1.5~4% 수준으로 오르고, 재건축의 경우 상승폭이 이보다 낮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 1년 전보다 4.8%, 건설공사비 지수가 14% 오른 점을 감안하면 실제 물가상승분을 상쇄하기는 역부족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서울시내 한 저층주거지 일대./연합뉴스

세부적으로 보면 건축비 상승분이 거의 반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실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현재 분양가가 3.3㎡당 2580만원인 재건축 사업장에서는 이번 제도 개선으로 분양가가 3.3㎡당 2640만원으로 약 60만원(2.3%) 오른다. 이 중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 소요되는 명도소송비·이주비 금융비 등을 포함한 정비사업 비용은 51만원(1.9%)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본형건축비 상승액은 9만원(0.3%)에 불과하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철근·레미콘 등 자잿값이 급등한 작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공사비는 중견업체 기준으로 5~10%, 중소업체 기준 10% 이상 올랐다”면서 “기본형건축비 증가로 인한 분양가 상승폭이 1%가 채 되지 않아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도 “인상폭이 기대했던 것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라고 했다.

정비사업 비용으로 반영된 것들 중에도 여전히 빠진 항목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비사업을 추진하다보면 명도소송 외에도 다른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고, 또 소송이 벌어진다고 하면 사업기간이 늘어나므로 인건비 등 조합운영에 필요한 비용도 발생하는데 그런 부분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재광 도시정비협회 사무국장도 “필수소요 경비에 각종 회의비용만 포함될 뿐 인건비 등 조합운영비가 빠져있고 기부채납하는 정비기반시설 설치비 등도 제외됐다”면서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도 적지 않아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 택지비 심사 합리화는 긍정적… “멈춰있는 분양 물량은 풀릴 듯”

분양가 상승폭에 대해서는 아쉬운 반응이 나오지만, 분양가 심사절차가 이전보다 합리적으로 바뀌고 투명성이 제고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원이 단독으로 택지비 감정평가 결과를 심사하던 것을 바꿔 앞으로는 부동산원과 전문가, 감정평가사 등이 참여하는 ‘택지비검증위원회’를 신설해 심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21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연합뉴스

업계에서는 이런 조치를 환영하고 있다. 깜깜이로 진행되던 심사절차가 투명해졌다는 점에서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그동안 부동산원에서 실시하는 택지비 적정성 평가가 택지비 감정가를 삭감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됐다”면서 “부동산원 단독으로 진행하던 것을 민간 평가사와 전문가를 포함해서 신속하게 검증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은 기존의 관행을 바꾸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여 긍정적”이라고 했다.

HUG 고분양가 심사과정에 사업장 선정 기준을 바꿔 심사가격 상한을 개선한 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정부는 현재 비교대상 인근 사업장을 ▲500m 이내 ▲준공 20년 내 ▲사업안정성·단지특성 유사성 기준에 따라 선정하고 있는데, 이 세가지 요건 중 준공시점을 10년 이내로 변경해 심사가격이 높아질 수 있는 여지를 줬다. 또 비교사업장 선정 시 세부 평가기준 및 배점을 모두 공개하도록 해 투명성을 높였다.

정부 대책을 기다리며 분양을 늦춘 단지에서는 이번 조치로 다소 공급물량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입주자 모집 공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모든 사업장에 이번 개선책을 적용하기로 하는 방식으로 규제 완화를 기다리며 분양을 미루는 공급 공백을 최소화한 점은 바람직하다”면서 “서울 등 정비사업이 주택 주 공급원 역할을 하는 대도시에서는 분양 일정이 지연되는 문제에 다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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