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한국 자동차의 기회

지난달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40대 독일인 신사 옆자리에 앉았다. 그의 손에는 자동차 잡지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 전문지 가운데 하나인 '아우토 빌트'다.

지면 한쪽에는 최근 유럽에 출시된 신차들과 함께 기아의 신형 니로 전기차(EV)가 소개됐다. 자동차 전문 기자로서 호기심이 일어 니로 EV에 관해 묻자 “아직 타 보진 않았지만 가격 대비 디자인이나 성능이 괜찮은 차라고 생각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시승할 의향도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평소 잡지를 들고 다닐 정도로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독일인이 한국 자동차를 유심히 살펴보고 경쟁력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달라진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위상을 체감할 수 있었다.

탄소 중립과 전동화 전환을 앞두고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선 속도 전쟁이 시작됐다. 누가 얼마나 빠르게 내연기관차를 넘어 전기차로 연구개발과 생산 인프라를 탈바꿈시키고 시장을 주도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미 주요 자동차 기업들은 이르면 2025년, 늦어도 2030년까지 탄소 중립과 100% 전기차 전환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수년 내 다가올 현실이다.

속도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우리나라 대표 완성차 기업 현대차·기아도 전기차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기차를 쏟아내며 시장 공략에 고삐를 당겼다.

구체적 성과도 나타난다. 현대차 아이오닉5는 '2022 세계 올해의 차', 기아 EV6는 '2022 유럽 올해의 차'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1분기 테슬라가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점유율 75.8%로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현대차는 9%를 차지하며 유럽 최대 완성차 기업 폭스바겐(4.6%)을 제쳤다.

다음 과제는 전기차 시대를 함께 이끌 협력사 및 노사와의 상생 관계 구축이다. 현대차·기아 노조는 올해 단체교섭에서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신규 충원과 정년 연장 등 고용 안정을 요구하고 있다. 많은 협력사도 당장 전기차 부품을 생산해선 이익을 남길 수 없다며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완성차 입장에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 전기차 전환에 동참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난달 방문한 폭스바겐그룹 츠비카우 공장은 12억유로(약 1조6300억원)를 투자해서 내연기관 공장을 100% 전기차 공장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여러 협력사는 츠비카우 공장의 전동화 전환 계획을 믿고 전폭적 설비 투자에 나섰다. 폭스바겐그룹은 이 공장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과 수개월에 걸친 일대일 상담을 통해 고용 불안감을 해소하고 전기차 생산 재교육을 실시했다.

폭스바겐그룹의 전기차 공장 전환 사례처럼 우리도 신뢰를 바탕으로 머리를 맞대면 얼마든 변신에 성공할 수 있다. 함께 손잡고 자동차 산업에 도래한 기회를 잡아야 한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