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불법체류자에 자재값 인상까지"..'삼중고' 맞은 구로구 인력시장 [르포]

김현정 2022. 6. 2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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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새벽 남구로역 앞 사거리에서 구직자들이 모여있다. [한재혁 인턴기자]
"불법(체류자) 때문에 합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못 나갔잖아!"

21일 서울 남구로 새벽 인력시장에서 만난 60대 구직자 A씨의 말이다. 이따금 팔을 휘저으며 언성을 높였고, 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다른 구직자들도 공감하는 듯 했다. 가뜩이나 줄어든 일자리에 불법 체류자 등이 투입돼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건축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건설사들의 부담이 커지자 인력시장에도 그 여파가 전해지고 있다.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불법체류자를 고용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날 오전 4시30분경 방문한 남구로 인력시장은 건설현장 구직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동이 트지 않은 시간, 거리의 승합차들은 도로와 골목마다 정차한 뒤 문을 열고 일터로 나갈 구직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시간 가량 대기가 이어지는 동안 구직자들의 희비는 엇갈렸다. 구직자 중 일부는 콧노래를 부르며 승합차에 올라타는 반면, 웅크려 앉아 투입만을 기다리는 구직자도 있었다. 오전 6시 30분경이 되자 일터에 나가기를 포기한 구직자들이 한 명씩 자리를 떴다.

일터에 나가지 못한 구직자들은 역시 저마다의 막막함을 토로했다. 주된 불만은 일자리의 감소로 인해 생계유지가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최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해 시멘트 등 건축자재의 유통이 지체되면서 건설현장 작업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50대 구직자 B씨는 "얼마 전 (화물연대) 파업 때문에 원래 나가던 자리가 없어졌다"며 "요 며칠 동안 라면만 먹으면서 버텼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10년동안 이 일을 했는데 이렇게 굶은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는 점도 인력시장 구인난의 원인으로 꼽힌다. BNK경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원자재 가격은 전년 대비 50.5% 급등했다. 코로나19 회복 과정에서 수급불균형이 심화했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공급망이 막히면서 가격에 영향을 준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시멘트와 철근이다. 대한건축협회에 따르면 시멘트 가격은 작년 평균 t당 6만 2000원에서 올해 4월 9만 8000원으로 46.5% 인상됐다. 철근 가격 역시 작년 초 톤당 69만원에서 올해 5월 톤당 119만원으로 72.5% 급등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인력업체는 불법 체류자 등을 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노동현장에 투입해도 더 적은 돈으로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일 새벽 남구로역 앞 사거리에서 구직자들이 모여있다. [한재혁 인턴기자]
실제로 현장에서는 불법 체류자로 인해 고용시장의 경쟁이 심화됐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60대 구직자 C씨는 "새벽쯤 남구로역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에 가보면 불법체류자들이 조용히 모여서 승합차에 탑승하는 걸 볼 수 있다"며 "요즘은 일부러 불법체류자만 고용하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다. 인건비 외에 필수 건축자재 가격 인상으로 수익이 감소한 것이다. 앞서 한국은행 조사국은 지난 3월 보고서에서 "지난해 건설자재 가격상승이 중간투입비용 상승(12.2%)을 통해 건설업 부가가치를 15.4% 축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지난 17일 ▲건설 자재가격 파동 해소를 위한 범정부 비상종합대책 TF 구성 ▲건설자개 관련 관세·부가세 한시적 감면 ▲총사업비 조정제도 한시적 유연화 등의 내용을 담은 탄원서를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

[김현정 매경닷컴 기자 / 한재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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