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3위'..한달 만에 정치 무대로 호출된 법무부 장관

노현웅 2022. 6. 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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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7일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자리로 향하고 있다. 과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겨레 프리즘] 노현웅 | 법조팀장

지난주 있었던 한 언론의 차기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5.1%를 차지하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비슷한 시기 윤석열 정부 2인자가 누군지 묻는 설문에서도 한 장관은 37.3%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한 장관의 정갈한 메시지와 날렵한 스타일이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 리더십의 탄생에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검찰 조직을 통해 수사와 인사 정보를 한손에 장악한 법무부 장관이 취임 한달여 만에 정치영역에 호출되면서 주요 수사의 중립성 시비가 염려된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정권교체 초기부터 대대적인 전 정권 사정에 착수한 상황이다. 한 장관의 정치적 입지가 탄탄해질수록 전 정권 수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에 의구심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검찰이 만지작거리는 사건들을 생각해보자. 먼저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동부지검은 청와대 행정관 출신 박상혁 민주당 의원을 수사선상에 올리며 윗선 수사를 공식화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여성가족부의 대선공약 개발 지원 수사를 전 부처로 확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블랙리스트 고발 사건도 수사하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유족이 고발장을 내면,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김종호 민정수석, 이광철 민정비서관 등에 대한 수사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를 동시다발 파고드는 수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

한 장관은 개별 사건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그가 밝힌 방화벽은 낮고 허술해 보인다. 한 장관은 취임 직후 전격 단행한 검찰 간부 인사에서 본인과 같은 디엔에이(DNA)를 가지고 있는 ‘특수통’들을 전국 검찰청 주요 보직에 배치했다. 인사권자의 지휘 방침을 노골적으로 밝힌 셈인데, 사건을 키우고 더 많은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핵심 성과지표인 특수부 검사들이 얼마나 품격 있고 절제된 태도로 수사에 임할까. 유력 차기 주자로 언급되는 법무부 장관과 이심전심인 검사들의 전 정권 수사에 국민의 절반이 박수를 보낼 수 있을까? 

물론 국민을 반으로 나눈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이라 이름 붙인 전 정권 사정을 위해 검찰을 유용한 도구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잔뜩 몸집을 키운 ‘윤석열 사단’이 칼끝을 자신들에게 돌렸을 때, 이에 맞선 문재인 정부 인사들의 모습을 보며 국민은 그 위선과 독선에 염증을 키웠다. 그 결과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대선 국면 내내 우위를 놓치지 않았던 ‘전 정권 심판론’이 이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의 정치 직행은 우리 법치주의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던 준사법기관의 수장이 정치의 한복판으로 곧장 뛰어들면서, 직전까지 그가 지휘하던 모든 검찰 수사와 공판은 그 중립성과 순수성을 의심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본인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그토록 사랑한다던 검찰조직을 ‘사법의 정치화’의 볼모로 내놨다. 여야로 편을 가르는 정치의 문법에 법치마저 오염되면, 사법부를 무대로 벌어지는 공동체의 가치 논쟁도, 국가 형사사법시스템도 모두 망가질 수밖에 없다. 한 장관을 정치의 무대로 초청한 여론조사 결과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애초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도 추미애 전 장관과의 갈등 국면에서 갑자기 대선 주자로 등판했던 한 여론조사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던가.

다행히 한 장관은 조사 결과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하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세히 안 봤다. 제 할 일 열심히 하겠다”고만 답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여론조사 후보군에서 빼줄 것을 요청하는 것은 어떨까? 한 장관이 사직 인사에서 밝혔듯 공정은 실체(what it is)만큼이나 보이는 외관(what it looks)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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