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돌릴 때마다 '또 저 배우'.. 헷갈리는 시청자들

이복진 2022. 6. 2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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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겹치기 출연' 논란
이경영·임수향·허성태 등 다수 도마위
일부 인물은 캐릭터까지 비슷해 눈살
전편 출연진 타드라마 패키지 등장도
"시청자 문화 향유 다양성 기회 침해
배역독점은 동료 배우 출연 막는 꼴"
방송국 "장르물 주·조연 부족한 현실"
방송가 오래된 문제인 배우 돌려막기가 여전하다. 동시간대 각기 다른 배역으로 출연하는 ‘겹치기’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맡은 배역까지 서로 비슷해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어, 저 배우 또 나오네. 이번에는 병원장이네. 저번에는 국회의원 아니었어?”

방송사의 배우 돌려막기가 여전하다. 심지어 최근에는 배우 한 명이 아니라, 전편에서 같이 연기했던 배우들이 마치 패키지처럼 다른 작품에 동시 출연한다. 비슷한 시간대 방송하는 드라마에 겹치기 출연하는 것은 이제 예삿일이 된 것처럼 흔해졌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들은 이전 드라마가 끝났는지 제대로 실감할 수 없다. 새로운 드라마에 출연하지만, 캐릭터가 비슷하다 보니 어떤 드라마인지 헷갈린다.

지난달 28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는 대표적인 악역이 2명 있다. 조태섭 국회의원과 장일현 검사다. 조태섭은 검사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뒤 막후에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국민을 위한 국회의원이지만, 뒤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살인 교사도 서슴지 않았다. 장일현은 주인공의 대학 선배로, 조태섭을 비롯한 권력층에 빌붙어 주인공을 괴롭혔다.
지난 3일 같은 날 방송을 시작한 MBC 금토드라마 ‘닥터로이어(왼쪽)’와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에 겹치기 출연 중인 이경영.
두 배역을 연기했던 배우들이 공교롭게도 지금 또 같은 드라마에 출연 중이다. 바로 지난 3일부터 방송 중인 MBC 금토드라마 ‘닥터로이어’의 이경영과 김형묵이다. 둘의 배역은 전작과 비슷하다. 국회의원과 검사에서 병원장과 의사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경영이 연기하는 구진기는 주인공이 다니던 병원 원장으로 뛰어난 흉부외과 의사였지만 권력의 맛을 보면서 대리 수술, 수술 청탁 등 비리를 서슴지 않는다. 김형묵이 연기한 박기태는 주인공과 같은 병원에 다니는 봉직의(페이 닥터)로, 권력을 위해 주인공을 배신하고 구진기 편에 섰다. 둘의 모습은 전작의 조태섭과 장일현을 떠올리게 한다. ‘닥터로이어’에서 검사 금석영을 연기하고 있는 임수향도 21일 종영하는 SBS 월화드라마 ‘우리는 오늘부터’에서 보조작가 오우리로 겹치기 출연 중이다.
더욱 이경영은 같은 날 방송을 시작한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에서도 비슷한 배역으로 출연 중이다. 대기업 한수그룹 한상범 회장으로, 주인공이 다니는 법무법인 대표, 국회의원과 함께 온갖 비리를 저지른다.
KBS2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왼쪽)에서 병조판서로 출연 중인 허성태는 JTBC 수목드라마 ‘인사이더’에서 금융수사 부서 부장검사로 겹치기 출연 중이다..
허성태도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에 겹치기 출연하고 있다. 허성태는 지난달 2일부터 방송 중인 KBS2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에 병조판서 조원표로 열연하고 있다. 그러는 동시에 지난 8일 첫 방송한 JTBC 수목드라마 ‘인사이더’에서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 윤병욱으로도 출연 중이다. 조선시대와 현재라는 시대 배경 차이가 있지만,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서 조태섭에 저항했던 천하그룹 김건영 회장을 연기한 전국환은 지난 1일부터 SBS 수목드라마 ‘이브’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족까지 이용하는 한판로 전 국무총리로 활약 중이다.

이처럼 배우들이 비슷한 시기 드라마에서 연이어 출연하는 건 시청자가 해당 드라마에 집중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소수 배우가 배역을 독차지해 신인을 비롯한 새로운 얼굴들이 시청자들을 만날 기회도 줄어든다.
MBC 금토드라마 ‘닥터로이어’(왼쪽)에서는 검사, SBS 월화드라마 ‘우리는 오늘부터’에서는 보조작가로 겹치기 출연 중인 임수향.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몇몇 배우가 편성 시간, 캐릭터 등을 따지지 않고 막무가내식으로 출연했던 것이 이제는 너무 흔해졌다”며 “최근에는 편성 시간이 겹치는 것은 물론이고 비슷한 캐릭터 배역만 연기하는 배우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조연들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배우들의 동일 캐릭터 연기·겹치기 출연은 결국 시청자와 동료 배우에게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수 배우의 배역 독점과 겹치기 출연으로 시청자의 문화 향유 다양성 기회가 침해받고 있다”며 “갑·을·병·정 중 기득권을 가진 갑과 을에 속하지 못한 병·정의 배우들은 출연할 기회나 시청자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는 제작진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지 못한 결과”라며 “결국 몇몇 배우에게만 재테크, 취업 알선을 해주는 격”이라고 강조했다.

방송국은 배우 겹치기 출연 문제에 대한 고충을 호소한다. 최근 장르물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이 장르물에 맞는 배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명이다. 한 방송국 관계자는 “요즘 방송 트렌드는 장르물인데, 이 장르물을 소화할 수 있는 주·조연급 배우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겹치기 출연도 방송국이 원한 것도 아니고, 드라마 방영 시기를 조율하다 보니 발생한 우연”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3일 진행된 ‘닥터로이어’ 제작발표회에서 이용석 PD도 겹치기 출연에 대해 “겹치기 출연 문제는 내가 뭐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배우들이) 스케줄이 겹치면 하지 않을 텐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됐다”며 “아무도 원하지 않은 상황이고 누구를 비난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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