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들을 보라

김경욱 2022. 6. 2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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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이들. 헌법소원 청구인은 아이 62명으로 이들 가운데 태아 1명을 포함해 5살 이하가 40명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편집국에서] 김경욱 | 스페셜콘텐츠부장

세상에서 가장 작고 여린 존재들이 나섰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의 주체는 다름 아닌 10살 이하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친환경 교통수단이자 자신들의 자가용 격인 킥보드를 손수 몰고 와 한쪽에 나란히 ‘주차’하고, 부모와 함께 준비해온 손팻말을 꺼내 들었다. 6월의 햇살이 양명한 아이들 위로 뜨겁게 내려앉았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40%는 위헌이다. 미래세대 기본권을 보장하라.” 부모들이 선창하자, 아이들도 두 주먹을 꼭 쥐고 따라 외쳤다. “보장하라.” 이들 가운데는 만 2살이 채 되지 않은 22개월 된 은우도 있었다.

아이 부모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소원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이 시행령은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 줄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3조1항) 이 목표 자체가 미흡한 수준이어서, 아이들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등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이번 소송을 대리하는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주장이다.

청구인은 62명으로 모두 아이들이다. 이들 가운데 40명이 5살 이하다. 대표청구인은 20주 뒤에 태어날 태아 ‘딱따구리’(태명)다. 세상에 탄소를 1g도 배출하지 않은 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재난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

아이들이 조그마한 손으로 들어 올린 팻말을 떠올리면 목이 멘다. 은우 손에는 “지구는 우리 꺼”라고 적힌 팻말이 들려 있었고, 초등학교 4학년 선희가 내보인 스케치북에는 “지구를 지켜주세요.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미래는 우리의 것”이라고 쓴 아이도 있었고, “멸종위기의 동물”이라는 글과 함께 코끼리, 호랑이, 북극곰, 펭귄 등을 그려온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의 미래는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앞으로 폭염, 폭우, 가뭄, 한파, 폭설 등 기후위기를 복합적으로 겪게 될 뿐만 아니라, 일회용품 사용 등 지금까지 어른들이 누려온 생활의 편리를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세대가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탓에 책임이 가장 적은 아이들이 심각한 위기에 노출된 것이다.

징후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17일 일부 지역 한낮 최고기온이 40도를 넘는 등 75년 만에 가장 이른 폭염이 찾아와, 일부 시당국은 야외활동과 에어컨 없는 실내 행사를 금지했다. 스페인과 영국도 이상 고온으로 시름겨워하고 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는 지난달 말 갑작스러운 홍수에 이어 19일엔 폭우로 수백만명이 침수 피해를 보았다.

이번 헌법소원의 쟁점은 정부가 온실가스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조처를 했는지와 현재 정책이 미래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는지다. 앞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 독일 기후변화법에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미래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다. 프랑스 파리행정법원도 같은 해 2월 프랑스 정부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발생한 생태적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국 상황은 더디기만 하다. 헌재는 아이들에 앞서 같은 취지로 청소년기후행동과 기후위기비상행동이 2020~2021년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들을 아직 심리 중이다. 헌재뿐만이 아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 6개월 유예 등 정부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 정책도 제자리걸음이다.

기후위기는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아들딸, 조카, 손주, 이웃집 아이들의 이야기다. 그날 초등학교 4학년 한제아 어린이의 말은 어른인 나를 무참하게 만들었다. 제아는 말했다. “저도 지구 환경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크면 너무 늦습니다. 우리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아주세요. 어른들은 우리 미래와 상관이 없습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진 미래에 어른들은 없을 거고, 우리는 고통스럽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아이들을 보라. 이 작고 여린 존재에게 책임을 떠넘기진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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