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 전설의 시작..21세때 썼던 일기 속 다섯 문장

김소정 기자 2022. 6. 1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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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3월28일. 21세 소녀가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 그 소녀는 공항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 쓰며 다짐했다.

성악가 조수미/조선DB

“어떤 고난이 닥쳐도 꿋꿋이 이겨내며 약해지거나 울지 않을 것”

이어 ▲절대 약하거나 외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늘 (예술가로서) 도도하고 자신만만할 것 ▲어학과 노래에 치중할 것 ▲항상 깨끗하고 자신에게 만족할 만한 몸가짐과 환경을 지닐 것 ▲말과 사람들을 조심하고, 말과 행동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 소녀는 이를 악물고 노력한 끝에 정상에 올랐다. 그는 바로 성악가 조수미(59)씨다. 등 떠밀리듯이 이탈리아로 유학을 온 조씨는 19일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날 단단하게 하려고 이 시련이 왔다고 생각했다. 포기하고 돌아가는 건 내 운명의 시나리오에 안 맞는 것 같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조씨는 ‘나는 될 사람’이라고 믿으며 외로운 유학 생활을 견뎠다.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세계 무대에 데뷔한 그는 40년 가까이 세계 최정상의 성악가로 군림 중이다.

1983년 3월28일 조수미씨가 이탈리에서 쓴 일기/SBS '집사부일체'

조씨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디바’ 콘서트 무대에 섰다. 코로나로 대부분 콘서트가 취소돼, 약 2년 만에 오른 유럽 무대였다. 2000석 공연장은 관객들로 가득찼고, 조수미는 두 번이나 입장권을 환불받아야 했던 팬들을 위해 열연했다.

내년에 프랑스에는 조씨의 이름을 딴 국제 콩쿠르가 생긴다. 조씨는 “정말 제가 꿈꾸던 것이다. 처음 이탈리아에 가서 오페라를 할 때 ‘동양인이 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창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잘 돼서 콩쿠르도 우승하고 그랬다. 제가 느낀 게 ‘언젠가는 내 이름을 건 콩쿠르를 유럽에서 열리라’였다. 진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이제 한국 아티스트들은 저만큼 고생하지 않고, 쉽게, 어렵지 않게 세계적으로 반짝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조씨가 20년 넘게 쓰고 있는 캐리어는 손잡이가 삐걱거리고, 곳곳에 실밥이 해진 흔적이 있었다. 조씨는 “내가 울었던 모습, 기뻤던 모습을 다 함께 했는데 못 버린다”며 캐리어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캐리어에서 가장 먼저 나온 건 세월의 흔적이 선명한 악보 가방이었다. 이어 길거리에서 산 선글라스, 15년 된 수면 양말들이 들어 있었다. 명품 선물을 많이 받지만, 자신이 가장 편한 물건을 주로 쓴다는 조씨는 “겉모습으로 사람 판단하면 안 된다. 속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성악가인 조씨는 365일 중 360일을 호텔에서 묵는다. 한국에는 집이 없다. 조씨는 “아티스트들은 항상 떠돌이지 않나. 아무래도 호텔에 많이 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 곳이 내 집이다. 내일은 오스트리아의 또 다른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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