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 전설의 시작..21세때 썼던 일기 속 다섯 문장
1983년 3월28일. 21세 소녀가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 그 소녀는 공항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 쓰며 다짐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꿋꿋이 이겨내며 약해지거나 울지 않을 것”
이어 ▲절대 약하거나 외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늘 (예술가로서) 도도하고 자신만만할 것 ▲어학과 노래에 치중할 것 ▲항상 깨끗하고 자신에게 만족할 만한 몸가짐과 환경을 지닐 것 ▲말과 사람들을 조심하고, 말과 행동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 소녀는 이를 악물고 노력한 끝에 정상에 올랐다. 그는 바로 성악가 조수미(59)씨다. 등 떠밀리듯이 이탈리아로 유학을 온 조씨는 19일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날 단단하게 하려고 이 시련이 왔다고 생각했다. 포기하고 돌아가는 건 내 운명의 시나리오에 안 맞는 것 같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조씨는 ‘나는 될 사람’이라고 믿으며 외로운 유학 생활을 견뎠다.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세계 무대에 데뷔한 그는 40년 가까이 세계 최정상의 성악가로 군림 중이다.
조씨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디바’ 콘서트 무대에 섰다. 코로나로 대부분 콘서트가 취소돼, 약 2년 만에 오른 유럽 무대였다. 2000석 공연장은 관객들로 가득찼고, 조수미는 두 번이나 입장권을 환불받아야 했던 팬들을 위해 열연했다.
내년에 프랑스에는 조씨의 이름을 딴 국제 콩쿠르가 생긴다. 조씨는 “정말 제가 꿈꾸던 것이다. 처음 이탈리아에 가서 오페라를 할 때 ‘동양인이 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창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잘 돼서 콩쿠르도 우승하고 그랬다. 제가 느낀 게 ‘언젠가는 내 이름을 건 콩쿠르를 유럽에서 열리라’였다. 진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이제 한국 아티스트들은 저만큼 고생하지 않고, 쉽게, 어렵지 않게 세계적으로 반짝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조씨가 20년 넘게 쓰고 있는 캐리어는 손잡이가 삐걱거리고, 곳곳에 실밥이 해진 흔적이 있었다. 조씨는 “내가 울었던 모습, 기뻤던 모습을 다 함께 했는데 못 버린다”며 캐리어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캐리어에서 가장 먼저 나온 건 세월의 흔적이 선명한 악보 가방이었다. 이어 길거리에서 산 선글라스, 15년 된 수면 양말들이 들어 있었다. 명품 선물을 많이 받지만, 자신이 가장 편한 물건을 주로 쓴다는 조씨는 “겉모습으로 사람 판단하면 안 된다. 속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성악가인 조씨는 365일 중 360일을 호텔에서 묵는다. 한국에는 집이 없다. 조씨는 “아티스트들은 항상 떠돌이지 않나. 아무래도 호텔에 많이 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 곳이 내 집이다. 내일은 오스트리아의 또 다른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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