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코노미] 이재용 "기술 초격차만이 삼성의 미래 살 길"
반도체·전기차 생산현장 방문뒤
뼈저리게 느낀 '기술' 중요성 강조
전장사업 등 21일 회의안건 주목
지난 19일 서울 김포공항 입국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상기된 표정으로 귀국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한달 전 평택 반도체공장에서 "땡큐 삼성"이란 찬사를 받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유럽의 반도체장비업체와 전기차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나서 '선친 이건희 회장이 구축한 초격차가 눈 깜짝 할 사이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감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서울대 동양사학)와 경영학(게이오대 석사,하버드대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그래서 한때 휴대전화 세계 최강이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 또 메모리 반도체 강자였던 도시바 등이 쇠락한 원인을 꿰뚫고 있다. 글로벌 기술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작년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된 이후 같은 해 11월 미국, 12월 중동에 이어 2년 만의 유럽 출장길에서 눈으로 직접 첨단기술 현장을 확인했다. 귀국장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번째도 기술, 두번째도 기술, 세번째도 기술"이라며 삼성호가 향후 미래기술 경쟁을 더 치열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시장에 여러 가지 변화와 불확실성이 많은데 우리가 할 일은 좋은 사람을 모셔오고, 또 우리 조직이 예측할 수 있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럽 출장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었던 일정으로 지난 14일(현지시간) 방문한 네덜란드 ASML을 꼽았다. ASML은 반도체 첨단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업체로, 이 부회장은 지난 2020년 10월에도 이 곳을 방문한 바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이 동석한 이번 미팅에서는 미래 반도체 기술 트렌드, EUV 장비의 원활한 수급 방안, 중장기 사업 방향 등에 대해 폭넓게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ASML 방문이 '가장 중요했다'고 언급한 만큼 EUV 장비 수급과 관련해 유의미한 결과가 있었을 것으로 해석했다.
이 부회장은 벨기에 루벤에 위치한 유럽 최대 규모 종합반도체 연구소 imec를 방문했다. 반도체를 비롯해 인공지능(AI), 바이오·생명과학, 미래 에너지 등 첨단 분야 연구과제를 소개받았다. 삼성이 시스템반도체와 바이오 등에서는 '도전자'의 위치인 만큼, imec 등과의 협력으로 관련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이다.
앞서 삼성은 5년간 국내·외에서 총 450조원 규모의 초대형 중장기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이 부회장은 "투자는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고 결기를 밝혔다. 유럽에서 세계와의 차이를 체감한 그가 어떤 '구상과 해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그는 이번 출장에서 기대됐던 구체적인 인수합병(M&A) 실행 계획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출장을 통해 방문한 파트너사와 자회사를 언급한 점으로 봐서 차세대 반도체와 전기차용 배터리·전장 관련 사업에 후속 플랜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 핵심 먹거리인 전기자동차용 전장 부품사업과 관련,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하만(유럽 공장)을 찾았다. 하만은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 인수합병(M&A)한 회사로 글로벌 전장 사업 확대를 위한 전진기지다. 이 부회장은 "자동차 업계의 급변하는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장중 상당 기간을 최윤호 삼성SDI 사장이 동행한 것도 의미가 크다. 헝가리 배터리 공장을 방문하고, 전기차 배터리 파트너사인 BMW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 부회장이 귀국하면서 재계는 이번주부터 진행되는 삼성전자의 상반기 경영전략회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오는 21일부터 주요 경영진과 임원, 해외 법인장이 참석하는 경영전략회의를 부문별로 연다. 그간 코로나19로 연말에만 진행했다가 4년만에 부활하게 된 상반기 경영전략회의에 이 부회장이 직접 참석하지는 않지만, 이 부회장이 제시한 키워드가 주요 안건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전혜인기자 hy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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