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와 사회적 계층이동: 진척이 없다
[세계의 창]
[세계의 창] 티모 플렉켄슈타인 |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스스로를 속이진 말자. 특이한 예외는 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적 계층이동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이름 그대로 그들의 목표는 전통적 사회질서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질서는 그 핵심에 사회적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보수정당들이 현실에서 이를 얼마나 고수하는지는 차이가 있다. 보수정당이 현대사회의 불평등 정도를 진심으로 우려해서일 수도 있고, 유권자들이 자녀의 미래에 큰 함의를 갖는 불평등을 점점 더 우려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이 보수를 신뢰할 수 있는 진보세력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일부 사람들이 ‘진보적 보수주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이는 명백한 모순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2005년 영국 보수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공개적으로 당의 ‘현대화’를 주창했다. 이는 (캐머런의 후임자인) 테리사 메이 전 총리의 말을 빌리자면, 많은 사람이 당을 ‘악질 정당’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측은지심을 보여주는 것이 새 ‘주문’이 되었고, 캐머런의 보수당은 이를 통해 정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긴축정책을 펴면서 이 측은지심은 축소됐다. 당연히 빈곤 관련 지표는 악화했고, ‘아동빈곤위원회’는 ‘사회적 계층이동과 아동빈곤 위원회’로 바뀌더니 이후 ‘아동빈곤’이란 용어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 움직임의 명백한 정치성을 지우기 위해 저명한 노동당 정치인이 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됐으나, 그는 정부가 이 문제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며 동료 위원들과 함께 사임한다.
물론 사회적 계층이동 문제가 여전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여전히 (총리 공관이 있는) 다우닝가를 점령하며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정부의 사회적이동성위원회 의장은 “영국에서 가장 엄격한 학교”로 널리 알려진 학교 교장 출신이다. 그녀는 경비원의 딸이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가는 것에 집착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이 회계사, 금융가 또는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해왔다. 대신 “집배원 아들이 지점장이 되는 것”을 칭찬해야 한단다. 물론, 사회적 이동성이 꼭 최고위직에까지 올라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대학을 가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옳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 노동시장에서는 여전히 기술직을 필요로 하고, 영국은 물론 제조업이 중요한 한국에서는 더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부모들은 자녀들이 더 많은 교육, 가능한 최고의 교육에 ‘집착’할까? 양극화된 노동시장에선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특히 영국과 한국처럼 고등교육을 받지 않았을 때 의미 있는 직업적 대안이 없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에서 고등교육은 필수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사회적 계층이동을 하기 위해 ‘더 많은 교육’만으로는 더는 충분하지 않고, 많은 경우 적당히 괜찮은 삶을 사는 데도 충분치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상대적 교육의 수준이다. 성공하려면 다른 이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 최고의 교육을 위한 ‘군비 경쟁’은 승자독식 노동시장에서 점점 더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제 우리는 양극화된 노동시장에서 점점 커지는 사회적 불평등의 근본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계층이동과 교육을 말할 수 없다. 이는 괜한 평지풍파를 원치 않으며 정치자금 대부분을 재계에서 얻는 보수주의자들에게 불편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존슨 총리의 위원회처럼 더 많은 규율, 전통적 가치,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당연히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고장 난 사회적 엘리베이터”의 해결책은 아니다. 대다수가 벗어나기 쉽지 않은 “끈끈한 바닥”과 특권층을 위한 “끈끈한 천장”으로 나뉘어 있는 시스템은 영국과 한국 모두에서 보수 엘리트들을 위해 기능한다. 보수주의는 전통적인 사회의 불평등을 유지하는 기반 위에 만들어져 있다. 진보진영은 이러한 정치적 보수주의의 핵심을 잘 활용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폭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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