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으로 강남빌딩 투자.. 한우·와인도 "쪼개서 삽니다" [심층기획 - '조각 투자' 전성시대]

박현준 2022. 6. 1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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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 지분으로 매매 차익·배당금 얻어
자본금 문턱 낮아져 20∼40대 참여 활발
최근 역삼동 빌딩 매각수익률 2년 새 19%
한우 송아지 키워 파는 이색 투자상품도
사업 영역마다 투자자 보호 등 천차만별
"제도 인프라 구축·투기 억제 방안 필요"
금융당국, 조각 투자 가이드라인 마련
'권리 증권성' 여부 따라 법 적용 달라
지난달 16∼1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역삼 런던빌’을 매각할지를 두고 총회가 열렸다. 어지러운 주주총회 현장의 모습은 없었다. 카카오, 네이버 인증서를 통한 카사 거래소 내 수익자총회 투표방식이기 때문이다. 투표 결과는 매각 확정. 매각 추진금액은 117억원으로, 2020년 12월 런던빌을 101억8000만원에 공모한 이후 지급된 배당금과 처분금 등을 감안하면 누적 수익률은 19.78%(세금 및 비용 차감 전)에 달한다.
 
‘조각투자’ 전성시대다. 몇 년 사이에 소액으로도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조각투자는 거금이 필요한 강남 빌딩과 미술품부터 시작해 소, 위스키처럼 독특하다 싶은 상품에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여기에 MZ세대들이 투자에 뛰어들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역삼 런던빌을 매각한 ‘카사’는 소액으로 도시 빌딩투자를 한다는 목표로 설립된 회사다. 투자자들은 투자를 하면 ‘부동산 디지털 수익증권’(댑스·DABS)을 취득하고, △임대 배당수익 △댑스 매매차익 △건물 매각차익을 얻을 수 있다. 1댑스는 5000원에 해당해, 5000원으로도 강남 빌딩에 투자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미술품·송아지·위스키 등 이색투자 상품 즐비

조각투자를 대중들의 뇌리에 박히게 한 건 세계 최초 음악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 투자 플랫폼을 표방한 뮤직카우의 영향이 컸다. 뮤직카우는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 형태로 투자자에게 지속적인 현금흐름이 발생하고, 이를 매월 수령할 수 있는 게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회원들은 매월 저작권료를 받거나 서로 사고팔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누적 회원 수는 약 110만명, 누적 거래액은 약 3715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규제당국에서는 뮤직카우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정의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조각투자로 획득한 권리의 성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권리자 보호 방식 등에서 확연히 규제를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당국은 최근에 뮤직카우에서 거래된 권리를 ‘투자계약증권’으로 정리했다. 시장에서는 조각투자의 성격에 대해 가이드라인이 나오자 안도했다.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됐기 때문이다.

음원, 부동산 등이 널리 알려진 조각투자 상품이라면 송아지 조각투자와 같은 이색적인 상품도 있다. ‘뱅카우’의 안재현 대표는 “소비자들은 안정적이고 성장성 있는 한우 자산에 투자하고, 농가는 토지와 축사를 매입하면서 부족해진 자본력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고 말했다. 뱅카우는 구제역 같은 전염병이나 사고로 송아지가 폐사해도 뱅카우가 구축한 보상체계와 국가에서 보장하는 가축재해보험으로 투자자들의 구매금 전액을 보호받는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롤렉스’, ‘로마네꽁티’도 조각투자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트레져러는 ‘맥캘란 파인앤레어 위스키 1991년’ 상품을 최근 공개해 1분 만에 ‘완판’했다고 소개했다. 이 위스키는 트레져러가 올해 1월 소더비 경매에서 1만7500유로(약 2332만원)에 낙찰한 위스키라고 한다.

투자만이 아니라 문화적 취향을 충족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아트테크 플랫폼’인 테사는 자신들이 거래한 미술품에 대해선 회원 전용의 ‘TESSA 뮤지엄’에서 전시하고 있다. 테사 회원이라면 언제든지 방문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400만원가량을 테사 판매 미술품에 투자했다는 윤모(34)씨는 “1000원이라는 소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고 미술품 조각투자가 세금에서도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조각투자 열풍 배후에는 20·30·40세대

업계에서는 조각투자 열풍의 뒤에는 20∼40대의 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정부가 대응하느라 시중에 돈이 풀리고 자산 가격이 급상승하는 와중에 소액이지만 안전한 실물자산에 투자하려는 심리가 조각투자에 쏠렸다는 얘기다. 주식이나 코인에 비해 투기성이 약하다는 측면도 있다.

카사의 경우 올해 5월 기준으로 가입자수는 16만명가량으로, 연령별 투자자 비중을 보면 20대 19.65%, 30대 34.01%, 40대 30.65%, 50대 13.52%, 60대 2.18%, 70대 이상 0.9% 순이다. 테사의 경우에도 5월 말 기준으로 앱 회원 수는 11만6400명으로, 연령별로 보면 30대(33%), 40대(28%), 20대(18%), 50대(13%) 순이다. 송아지 조각투자사인 뱅카우 역시 2만5000명이 회원에 가입해 있고, 실제로 펀딩을 참여하는 연령대는 30대(35.9%)와 40대(28.8%) 순으로 분포해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개별 사업마다 편차 크고 법적 불확실성 커

다만 조각투자는 새로운 유형의 투자 방식이기 때문에 업체마다, 사업영역마다 투자방식과 투자자 보호 등이 천차만별이어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김갑래 연구위원은 최근 ‘조각투자 가이드라인의 의의와 후속 과제’ 보고서를 통해 “특히 조각투자는 기존의 법체계가 예정하지 않은 신종 투자이기 때문에 법 적용에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며 “조각투자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인프라 구축과 함께 조각투자의 투기성을 억제하는 방안도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유권 분할? 수익 청구?… 꼼꼼히 따져야

조각투자는 비교적 새로운 형태의 투자방식인 만큼 투자자 입장에서 생소한 형태의 권리를 취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조각투자 회사마다 다종다양한 조각투자를 광고하고 있어 투자 전에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에서는 최근 ‘조각투자 등 신종증권 사업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규제를 하고 있다. 조각투자 때 가장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은 조각투자로 취득하게 되는 권리의 ‘증권성’ 여부다. 만약 투자자들이 소유권을 직접 보유하는 경우에는 조각투자 사업자의 사업 성패와 무관하게 재산권 등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실물 거래이기 때문에 금융규제 대상도 아니며 일반적인 민법과 상법의 규율 영역이다.
사진=뉴스1
반면에 투자자가 소유권이 아닌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청구권 등의 형태로 권리를 취득하는 경우에는 증권에 해당해 자본시장법상 규제대상이 될 수 있다. 자본시장법의 규율을 받게 되면 사업자는 제공하는 서비스의 내용에 따라 투자중개업·집합투자업 등 인가·허가·등록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사업자가 이런 인가·허가나 등록을 제대로 해놓지 않았다면 투자자 역시 예상치 못한 손해를 입게 될 수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조각투자의 사업화를 위해 금융규제 일부의 적용을 배제받아야 할 때는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에 따라 ‘금융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받고 한시적으로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때도 금융당국은 조각투자 사업에 대해 △혁신성과 필요성이 특별히 인정될 것 △투자자 보호체계를 충분히 갖출 것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을 분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조각투자 증권의 발행·유통이 금융시장, 투자자 편익, 조각 투자대상 실물자산·권리 시장 발전에 기여(혁신성)해야 하고, 조각투자 대상 실물자산·권리 법령에 따른 사업화가 불가능해 증권의 발행이 반드시 필요(필요성)해야 한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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