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돼지, 남긴 음식 다 먹나봐"..평론가의 트윗질에 셰프는 푸드트럭을 열었다 [씨네프레소]

박창영 2022. 6. 1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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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반드시 필요한 비판을 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은 상대방과 그의 가족, 친구들까지 모두 상처 주는 일이 될 수 있다.<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37] 영화 '아메리칸 셰프'

'일침'과 '사이다'의 시대다. 대중은 문제의 핵심을 요약해 짧은 메시지로 꼬집은 트윗에 열광한다. '좋아요' '하트' '리트윗'으로 대표되는 관심 자본은 희소하기 때문에 이를 얻기 위한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더 뾰족한 일침과 더 톡 쏘는 사이다가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압축적인 비판에는 종종 배경과 맥락이 생략되고, 지적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아메리칸 셰프`는 음식 평론가의 독설이 유발한 갈등으로 인해 직장을 떠나게 된 요리사가 푸드트럭으로 재기하는 과정을 담았다.<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아메리칸 셰프'(2014년)는 비평의 예의에 대한 영화다. 로스앤젤레스 일류 레스토랑 골루아즈의 셰프인 칼 캐스퍼는 어느 날 유명 요리 비평 블로거 램지 미첼의 방문을 받는다. 그러나 칼과 스태프들이 최선을 다해 준비한 요리에 램지 미첼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메뉴라는 독설을 남긴다. '극적인 체중 증가를 보아 하니 손님이 남긴 음식이 많아서 스스로 먹기 바쁜 모양'이라고 인신공격을 한다.
칼 캐스퍼는 자신의 요리에 대한 평론가의 독설을 참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 모습이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 그는 고급 레스토랑 요리사 경력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살 찐 셰프, 손님이 남긴 음식 다 먹는 듯"

사실 지난 5년간 레스토랑 '골루아즈'가 창의성을 잃었다고 생각한 건 셰프인 칼 캐스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본인이 레스토랑 오너가 아닌 이유로 사장의 요구에 따라 메뉴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평론가의 비평이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다. 전후관계에 대한 충분한 확인 없이 쏟아낸 독설일 뿐이기 때문이다. 요리 하나를 만드는 데 관여한 수많은 스태프의 마음에 상처가 될까봐 걱정한다.
칼은 평론가와 트위터 설전을 벌이게 된다.<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이 작품은 영화에 대한 영화로도 볼 수 있다. 거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상업영화에서 셰프에 해당하는 감독 또한 자본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다. '아메리칸 셰프'의 주연, 연출, 시나리오를 맡은 존 패브로는 여러 영화에서 배우, 감독, 각본가를 넘나들었다. '아이언맨'을 연출하며 마블 히어로 연작의 성공적 시작에 기여한 그는 '아이언맨2' 감독을 맡을 땐, 마블 스튜디오의 간섭에 학을 뗀 것으로 전해진다. '아메리칸 셰프' 속에서 주인공 셰프와 레스토랑 사장과의 껄끄러운 관계에는 이러한 감독 본인의 경험이 반영돼 있을지 모른다.
레스토랑의 사장(오른쪽 끝)은 창의적 메뉴를 내놓으려는 셰프를 만류한다. 자본가 입장에선 늘 안전한 선택에 끌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오너와의 갈등으로 인해 칼 캐스퍼가 주방을 지휘할 권한을 뺏긴 사이, 평론가는 레스토랑을 한 차례 더 찾고, 캐스퍼의 요리에 대한 실시간 악평을 트위터에 남긴다. 영화의 개봉 후 언론, 평단, 네티즌 평가에 실시간으로 상처 받는 영화인들처럼 분노를 느끼던 캐스퍼는 자신을 내쫓은 직장으로 한 번 더 찾아가 평론가에게 그간 쌓인 감정을 터뜨린다. "당신이 하는 게 뭔데? 앉아서 처먹고 되는 대로 지껄이고 시시덕거리면 땡이지. 내 스태프들 고생을 알아? 상처 받는다고!"
이 영화엔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잠시 등장한다.<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다이어트 중 관람하면 위험한 '웰메이드 음식 영화'

독설의 평론가에게 캐스퍼가 독설로 앙갚음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은 유튜브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가며 그를 곤란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셜미디어에서 캐스퍼를 유명 인사로 만든다. 레스토랑을 떠난 캐스퍼는 푸드트럭을 시작한다. 그의 타고난 요리 솜씨에 SNS를 이용한 마케팅이 더해지며 푸드트럭은 순식간에 핫플레이스로 떠오른다.
이 영화는 다양한 음식을 맛깔스럽게 담아낸다.<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린다. 미국 코미디에서 자주 드러나는 쿨한 태도가 돋보인다. 일류 셰프에서 길거리로 밀려난, 어찌 보면 꽤나 좌절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주인공은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는다. 그의 친구들도 애써 감동적인 말을 짜내 용기를 북돋워주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처지를 놀리며 옆에서 시간을 함께해준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재료를 손질하는 모습부터, 푸드트럭에서 쿠바식 샌드위치를 만드는 과정까지 맛깔나게 담아내 관객의 식욕을 자극한다. 다이어트 중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주인공이 푸드트럭을 통해 점점 유명해지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고 비판하기

킬링타임용으로 딱 좋은 이 영화는 남을 비판할 때 갖춰야 할 매너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짓는다. 과거의 앙금을 풀기 위해 푸드트럭을 찾아온 평론가에게 캐스퍼가 털어놓는다. "우리 사이의 일로 나도 충격이 컸어요. 당신은 내 자존심을 빼앗았고, 내 경력과 존엄성을 빼앗아갔어요. 댁 같은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겠지만 우리한텐 상처예요. 우린 노력한다고요."
영화는 반드시 필요한 비판을 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은 상대방과 그의 가족, 친구들까지 모두 상처 주는 일이 될 수 있다.<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한국 관객들도 공감할 지점이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그나마 음식 평론가가 음식에 대한 독설로 문제를 일으킨 정도였지만, 국내에서는 몇 년 사이 특정 분야에서 유명세를 얻은 사람이 세상 모든 분야에 '일침'을 가하고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무차별적 비판에 당사자, 가족, 친구들까지 상처를 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 꼭 필요한 비판을 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부담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넌지시 전한다.
`아메리칸 셰프` 포스터<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장르: 코미디
감독: 존 패브로
출연: 존 패브로, 존 레귀자모, 소피아 베르가라, 스칼릿 조핸슨, 더스틴 호프먼
평점: 왓챠피디아(3.9/5.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87%) 팝콘지수(85%)
※2022년 6월 17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티빙, 시즌

[씨네프레소 지난 회차]
17회-"이상형 아내, 밥 먹는 소리 거슬려 이혼 충동"…'팬텀 스레드'
23회-"내 아들은 괴물이다, 버려야겠다"…'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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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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