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밤길 위험은 망상?'..왜 이준석은 틀렸는가

2022. 6. 18. 18: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books]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저는 여성이 받는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목소리를 낼 것이다. 하지만 일각의 문제제기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보면서 전혀 공감이 안 됐다. 해당 책의 작가는 '자신이 걷기 싫어하는 이유가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보행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는데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 아닌가. (중략) 2030 여성들이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 본인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피해의식을 가지게 된 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준석, 2021.5.8. <한국경제> 인터뷰)

"(2017년 스탠포드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자들이 하루에 걷는 걸음 수는 남자보다 훨씬 적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저널리스트 탈리아 새드웰이 자카르타, 세마랑, 브리스톨, 워싱턴 같은 도시를 조사했더니 여자들이 학교나 직장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짧은 거리를 갈 때에도 택시나 우버, 버스를 타지 않을 수 없었다." (레슬리 컨,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231쪽. 영국 일간 <가디언> 2017년 10월 11일자 '안전에 지불하는 돈 : 왜 여성은 남성만큼 많이 걷지 않는가'에서 재인용. ☞<가디언> 기사 원문보기 )

같은 행성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두 사람이 완전히 정반대의 인식을 보이는 것은 도대체 어째서일까? 나이 탓? 1975년생인 레슬리 컨(이하 모든 직함·존칭 생략)이 이준석보다 10살 더 많다. 국적? 이준석은 한국인, 컨은 영국계 캐나다인이다. 보수적인 세계경제포럼(WEF)의 2019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성평등 지수는 캐나다 19위, 영국은 21위로 상위권이었고 한국은 108위였다. 저 연구나 저술이 이준석의 말을 반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수행된 것일까? 스탠포드대 연구팀이나 컨이 이준석의 존재를 알았느냐는 차치하고, 이준석의 <한국경제> 인터뷰는 2021년, 컨이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를 낸 시기는 2019년, 스탠포드대 연구 및 <가디언> 보도 시점은 2017년이다.

지적 능력·게으름이나 성별 감수성 같은 정성평가적 요인을 빼면, 결국 명확하게 남는 변수는 성별이다. 이는 일정 부분까지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컨은 이 책에서 자신의 청소년기를 회상하며 "남동생과 내가 경험한 도시 생활은 현격히 달랐다"고 했다. 컨은 자신의 남동생은 "밤에 귀가할 때 열쇠를 손마디 사이에 송곳처럼 끼우고 걸어본 적도 없을 것이고, 유모차가 인도를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로 어깨 밀치기를 딩해본 적도 없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친남매간인 두 사람은 "피부색, 종교, 장애, 계급, DNA의 상당 부분이 같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성별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책 12쪽)고 유머러스하게 결론지었다.

최근 한국어판이 나온 이 책의 원제는 '페미니스트 시티'이다. 컨은 "우리의 도시는 돌, 벽돌, 유리로 쓴 가부장제"라는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제인 다크의 말을 인용하며 "여자들의 도시 경험은 여전히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상징적 장벽에 가로막힌다"고 지적한다. 그는 "남자들은 이런 장벽을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이 장벽들을 보지 못한다"며 "도시는 남성의 경험을 '표준'으로 삼음으로써 여자들이 도시에서 어떤 장애물을 만나고 어떤 일상 경험을 하는지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컨은 "그 말은, 대부분 남자로 이루어진 도시의 주요 결정권자들이 경제정책에서부터 주택 설계에까지, 학교 부지 선정에서부터 버스 좌석에까지, 치안활동에서부터 눈 치우기에까지 이르는 모든 것에 대한 결정을, 그 결정이 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관심은커녕 지식조차 없는 상태에서 내리고 있다는 뜻"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도시는 "약에서부터 충돌 시험 인형에까지, 방탄조끼에서부터 선반 높이에까지, 스마트폰에서부터 사무실 온도에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남성의 신체와 필요에 따라 설계되고 시험되고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모든 형태의 도시계획은 '전형적인' 도시인에 대한 일련의 가정, 즉 그들의 이동패턴, 필요, 욕구,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도시인은 남자다" (60쪽)라고 그는 지적한다.

컨은 '피상적'이라는 뻔한 지적을 넘어 '망상' 운운하는 백래시의 야만에 반격의 공간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걷지 않는다', '여자들은 카페와 백화점에만 있는다', '여자들은 함께 화장실에 가고 오랜 시간을 소요한다'는 여성혐오의 클리셰는 컨의 책에서 전복된다.

예컨대 도시에서 여성의 공간이 한정된 것은 "건축 및 도시계획에서 소녀들과 젊은 여자들의 필요와 욕구는 거의 완전히 무시"되기 때문이다. "젊은이를 위한 공간을 부르짖는 지역사회가 제안하는 공간은 스케이트장, 농구장, 하키장"이지만 이는 "사용자를 소년으로 상정한 공간이자 소녀들은 들어가기도,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안전하다고 느끼기도 어려운 공간"(102쪽)이다.

또 컨은 "내가 공공장소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결국 내가 뭘 읽는지 궁금해하는 남자가 나타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내가 남자와 함께 공부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 앉아있을 때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152쪽)며 "여성이 공공장소에 혼자 있는 것에 오랫동안 제재가 가해져 왔음을 고려할 때, 커피숍은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군중 속에 익명으로 있기, 사람 구경하기, 공간 차지하기,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홀로 생각에 잠기기와 같은 도시생활의 정신적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는 곳"(161쪽)이라고 반론했다.

스케이트장, 농구장, 개방된 공원 등의 공공장소 대신 '소녀들과 젊은 여자들'이 원한 곳은, 한 스웨덴 건축사 사무소의 조사에 따르면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곳, 비와 바람이 차단된 곳, 밖에서 들여다보이지 않는 곳, 답답한 느낌 없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쇼핑센터와 백화점이 '여성의 공간'으로 명명된 배경도 짚었다. 책에 인용된 리즈 본디, 모나 도모시의 19세기 중반 뉴욕 도시공간 분석에 따르면 "브로드웨이와 6로 사이, 쉐스트10가와 웨스트23가 사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레이디스 마일'은 뉴욕을 대표하는 새로운 상점가로서 '적절하게 여성스러운' 것으로 간주되는 장소"였다고 한다.

"성 규범에 따르면 생산은 남자들의 세계에, 소비는 여자들의 세계에 알맞았다. 그러나 여자가 소비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여자에게 적절한 공간이 집으로 한정된다는 믿음에 위배됐고 남성적인 도시공간에도 여성의 출입을 허용해야 함을 의미했다. 결국은 빅토리아 시대의 (성) 규범을 지나치게 위반하지 않기 위해 '19세기 도시 내에 여성화된 소비공간을 개발하는 것으로 중도 타협됐다(156쪽)"는 것으로, 쇼핑 공간은 그 타협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컨은 "화장실의 필요성 및 접근성 역시 대단히 성 편향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며 "이 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대부분의 건축가와 도시계획가가 여자들이 화장실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혹은 필요로 고려하지 않는 남자라는 사실"이라고 행간에 분노를 담아 썼다.
그는 "대부분의 여성은 용변을 보는 데 남성보다 오래 걸리고, 정기적으로 생리를 하며, 옷을 아예 벗어서 걸어 놓거나 옷매무시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 우리는 휴지, 외투, 핸드백을 걸 자리, 문 달린 칸을 남자보다 더 많이 필요로 하고, 아기, 아이, 장애인, 노인의 화장실 이용을 도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중화장실은 이런 필요들을 인식하지도 충족하지도 못한다"(166쪽)라고 지적했다.

인기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등에서 '가정주부의 공간'으로 묘사된 '교외'의 발명은 논쟁적이다. "대중교통과 같은 공공 서비스로부터 고립된 넓은 집에 살려면 엄마가 전업으로 살림만 하면서 남편과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교외에 거주하는 '정상 가족' 모델은 "전통적인 이성애자 핵가족을 기반으로 하는 '성편향적 분업에 적합한 인프라'"라고 그는 분석했다.

이는 가정주부가 아닌, 자가용을 끌 수 있는 중산층이 아닌, 베이비시터 등을 고용할 수 없는 교외 거주 여성의 아침을 묘사한 다음 단락에서 두드러진다.

도시의 대중교통 체계는 대부분 9시부터 5시까지 일하는 회사원의 출퇴근에 맞게 설계돼 있다. 교외에 존재하는 극소수의 대중교통 또한 직장인을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방향으로 실어나르게끔 설계돼 있다. 시스템 전체가 다른 곳에 들르지도, 중간에 여러 번 멈추지도 않는 직선 이동을 전제한다. 이는 일반적인 남자 통근자에게 유리하다. 여자들의 출퇴근은 훨씬 복잡하다. 어린 자녀가 둘인 엄마는 지역 버스를 타고 가서 8시에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긴 다음, 왔던 길을 되돌아가 8시반에 첫째를 학교에 등교시킨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9시까지 회사에 출근한다. 집에 돌아올 때는 이 과정을 거꾸로 하는데, 중간에 수퍼마켓에도 들러서 저녁 찬거리와 기저귀를 사야 한다. (책 61쪽)

버스 등 대중교통은 그래도 '타기'만 하면, 동선이 복잡하더라도, 요금을 여러 번 내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다. 컨은 "나는 엄마가 됐을 때 런던에서 유모차를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금방 깨달았다. 많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있긴 하지만역이 너무 땅속 깊숙이 위치해 있어 총 270개 역 가운데 50개 역만 이용이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컨은 "대중교통은 여전히 '핑크 택스'가 존재하는 분야 중 하나"라며 "아이 엄마를 위한 시설의 부재가 노인 및 장애인 문제와도 일맥상통"함을 지적헀다. 장애이동권 단체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시위가 다시 이어지고 있는 2022년 한국의 상황에서도 컨의 지적은 울림을 남긴다. 여성 문제와 장애인 문제가 "일맥상통"한다는 컨의 통찰의 반대편에는, 여성 차별을 '망상'으로 치부한 이는 장애이동권 문제에도 역시나 강퍅한 태도를 보인다는 현실 사례가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컨이 털어놓듯,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는 해법 같은 것은 없고, 그것은 도시공간의 설계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다만 컨은 앞서 제기한 구체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끊임없는 노력에 주목한다. 컨에 따르면 샬롯 브론테(1816~1855), 제인 애덤스(1860~1935), 아이다 B. 웰스(1862~1931), 캐서린 비처(1800~1878) 등 "페미니스트 건축가들, 도시계획가들, 지리학자들은 성 편향적 경험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각자 자기 분야에서 중요한 변화를 일으켜 왔다." 물론 이들의 노력에도 "그러나 여자는 밤에 낯선 사람이 뒤따라오면 여전히 길을 건넌다"는 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컨은 "도시 설계 변화의 예에는 거리 조명 개선, 시야 확보, 주택단지를 지나는 통행량 많은 길이 포함된다"며 "주차빌딩, 공원, 캠퍼스에 비상 공중전화와 호출 버튼을 설치하면 안전감을 높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는 "페미니스트 건축가, 사회학자, 도시계획가로 이뤄어진 협동조합은 여자들이 공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즐길 수 있도록 가시성을 높이고 공공장소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르완다 키갈리에서 행상인으로 일하던 여성들은 수유실을 갖춘 안전하고 영구적인 시장 건물이 생기자 자신들의 안전과 경제사정이 개선됐다고 말했다"는 사례를 제시했다.

책에는 비교적 우수한 '페미니스트 도시'의 사례로 한국의 수도 서울도 잠시 언급된다. 컨은 "서울시는 직장 여성들이 통근할 때 겪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다며 "'하이힐 굽이 끼지 않는' 보도블록에서부터 '분홍색' 여성전용 주차장까지" 서울시가 기울인 노력을 흥미롭다는 듯 서술했다. 이는 오스트리아 빈과 함께 '성 주류화' 도시행정의 전형으로 꼽혔다. 다만 컨은 "하지만 (서울시는)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에서 나타나는 남녀 간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레슬리 컨 지음, 황가한 옮김) ⓒ열린책들

[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