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타임캡슐.."도자기는 바닷속에서 볼 때 훨씬 예쁘죠"

김서영 기자 2022. 6. 1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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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문가들에게 듣는 수중고고학 이야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유물과학팀 이보현 연구사, 이명옥 연구사 수중발굴과 양순석 연구관(왼쪽부터)이 지난 6월 1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김서영 기자

1976년 어부의 신고로 세상에 알려진 신안선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중고고학의 성과다. 신안선은 중국 원대 선박으로, 14세기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던 도중 고려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나온 유물은 도자기만도 2만5000여점에 동전 28t, 자단목 1000여본에 달한다. 한국 수중고고학은 신안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신안선 이전엔 연구자나 발굴인력이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신안선이 한국의 수중고고학을 건져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1980년대 완도선, 1990년대 진도선과 달리도선 발굴이 이뤄졌고, 2007년엔 태안 해역에서 주꾸미와 함께 도자기가 딸려 올라오며 난파선이 연이어 발굴됐다.

신안선을 보고 싶었다. 신안선의 선체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자체가 신안선을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해 건립됐다. 문화재란 알고 봐야 감동이 커지는 법, 연구소 수중발굴과 양순석 연구관, 유물과학팀 이명옥·이보현 연구사에게 지난 6월 13일 인터뷰를 청했다. 양순석 연구관은 여러 수중발굴에 참여한 베테랑이고, 이명옥 연구사와 이보현 연구사는 출수된 유물을 진정한 ‘유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수중고고학 이야기를 들었다.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신안선 선체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화재를 만나는 일

-연구소에서 맡은 업무를 소개해달라.

양순석(이하 양) “원래는 보존처리를 하다가 2000년 발굴을 배우기 시작해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전환했다. 중간에는 발굴과 보존처리를 같이하기도 했다.”

이보현 “보존처리와 더불어 기존에 보존처리된 유물을 모니터링한다.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고 재보존처리가 필요한지 판단한다.”

이명옥 “발굴과 보존처리를 거친 유물을 우리 연구소 소장품으로 등록하고 관리한다. 유물 한점 한점의 주민등록증을 만드는 작업이다. 도자기를 전공했기 때문에 그쪽으로 유물연구를 하기도 한다.”

-최근엔 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양 “제주 신창리 발굴은 잠깐 접어둔 상태이고 군산 선유도 인근 해역에서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오는 10월까지 계획해 뒀고, 유물이 나오고 있다.”

이보현 “신안선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이를 예방할지 연구하고 있다. 한국 배는 철못 없이 결을 맞춰 만드는데, 신안선은 중국 선박이다 보니 철못이 쓰였다. 1976년 발굴 당시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보존처리를 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철에 재부식이 일어나고 있다.”

이명옥 “소장품을 등록하고 외부에 대여하거나 유물정보를 공개하는 일을 한다. 요즘은 유물을 적극 활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추세여서 그런 작업도 한다.”

수중발굴 작업을 재현한 공간 / 김서영 기자

-어떤 학문을 전공해야 해양문화재 연구를 할 수 있나.

양 “발굴 쪽은 고고학, 사학, 해양물리학 전공자가 대부분이다. 지구물리, 해양물리 쪽 탐사 장비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발굴팀에도 보존처리 전문가가 들어와 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폭넓게 생각하면 된다.”

이명옥 “해양에서 출수되는 유물 상당수가 도자기여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게 도움이 됐다. 아무래도 도자기를 잘 아니까 유물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바다의 타임캡슐

-해양문화재에는 어떠한 고고학적 가치가 있나.

지정된 문화재 중에는 출토지와 제작 경위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반면 태안 마도에서 발견된 유물은 함께 나온 목간을 통해 고려시대 강진에서 제작된 도자기가 언제, 누구에게 가던 중 침몰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존했다는 의미 때문에 ‘타임캡슐’이라고도 한다.”

신안선 발굴 당시처럼 유물이 전시돼 있다. / 김서영 기자

-선체를 비롯한 유물이 해양에서 보존될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인가.

양 “물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산소포화도와 미생물에 의한 파괴가 줄어든다. 배가 침몰하면 그 하중에 의해 점점 더 갯벌에 깊이 파묻힌다. 조류에 의해 그 위에 계속 퇴적이 일어나면 진공관에 가까운 매장 상태가 된다. 그래서 신안선뿐만 아니라 마도 2호선 접판부재 또한 호기성 미생물에 의한 파괴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막 캐서 물에 담근 것처럼 건조한 생지(生紙) 같았다.”

-바다에서 건져낸 유물은 어떤 처리를 거치나. ‘골든타임’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보현 “육상에서는 발굴하면 바로 보존처리실로 보낼 수 있는 반면, 바다에서는 현장에서 응급처치가 이뤄져야 한다.”

양 “염기가 많으면 전시를 해서도 주변 유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발굴 현장에서도 탈염이 중요하다. 골든타임은 유물 종류에 따라 다르다. 목간은 출수하면 햇빛을 받아 산화 현상(검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 상태로 며칠을 두면 판독할 수가 없어진다. ‘며칠 내로 보존실에 가야 한다’는 법칙이 없어 보존과학자가 현장에 참여하는 게 좋다.”

-해양문화재 연구는 육상문화재 연구와 어떻게 다른가.

양 “발굴의 경우 호흡과 움직임을 다시 배워야 한다. 조류에 떠내려갈 수도 있고, 위치를 잃어버리거나 그물에 걸릴 수도 있다. 한정된 공기, 한정된 시간으로 작업해야 한다는 점이 큰 차이다. 장비의 가격만 보더라도 육상보다 훨씬 비싸다. 농담으로, ‘같은 면적이면 육상의 10배’라고들 한다.”

신안선에서 출수된 도자기 / 김서영 기자

■수중고고학의 보람과 과제

-양순석 연구관님은 수중발굴 경험이 풍부하지 않나. 작업하면서 위험했던 순간은 없었나.

양 “보령 쪽에서 탐사할 때, 한번은 그날따라 납을 엄청나게 차고 잠수했는데 갑자기 공기가 한방울도 안 나왔다. 그럴 땐 납을 다 벗어던지고 무조건 위로 올라가야 한다. 태안 마도에 들어갔을 때도 조류가 세서 줄이 풀리는 바람에 스스로 부력을 조절해 올라온 적이 있다. 공기가 안 나올 때와 그물을 만날 때가 가장 위험하다.”

-한국의 수중고고학은 어떤 수준인가. 일본 학자가 한국 수중발굴을 부러워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겸양인지 실제인지 궁금하다.

양 “아시아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동남아에 교육을 나가기도 하고, 중국도 우리의 누리안호(수중문화재 발굴 전용 선박)를 벤치마킹했다. 일본은 국가가 아닌 지자체 주도로 해양연구를 하다 보니 발굴 기반이 부족하다. 우리 인력은 그만큼 뒷받침되지 않는다. 수중발굴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정규직 연구원은 8명 정도, 넓게 잡아도 열댓명에 불과하다.”

이보현 “한국도 예전엔 보존처리 기술이 미진했기 때문에 일단 유물을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보존에 대한 관점이 처리된 유물이 더 악화되지 않게 모니터링, 예방하는 쪽이 중요해졌다. 신안선 선체가 보존처리를 끝내고 전시됐지만, 실은 아직도 보존처리 중이라고 생각한다.”

-수중고고학에 어떤 뒷받침이 필요한가. 앞으로의 과제는.

양 “수중발굴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인 첨단화를 해야 한다. 앞으로는 점점 잠수를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하는 쪽으로 바뀔 것이다.”

이보현 “현재 기술로는 (보존 방법을) 풀지 못하는 유물이 있다. 대나무가 대표적이다. 선체 쪽은 국내에서 처리된 사례가 쌓였지만, 대나무 소반이나 바구니 같은 건 전무하다. 실험해 보면서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 아울러 탱크를 비롯한 보존시설이 40년 전 신안선을 위해 만들어진 설비이다 보니 노후돼 확장이 필요하다.”

이명옥 “유물사진이 다 옛날에 찍었던 것이라 상당수는 다시 촬영해야 한다. 유물을 외부에 연구자료로 공개하는 것이 트렌드이기 때문에 유물공개 사업을 위한 예산과 인력이 확충된다면 좋겠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연구자도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2012년 보물로 지정된 ‘청자 상감국화 모란유로죽문 매병’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언제 보람을 느끼나.

양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들을 가장 먼저 본다는 것 자체가 희열이다. 대표적으로 진도에서 총통을 발견했을 때다. 가장 예쁜 건 도자기다. 물속에 있는 도자기에 햇빛이 들어와 그 빛이 반짝반짝 반사되는 장면은 그때만 볼 수 있다. 고려청자를 두고 ‘비색’이라 하는데, 물속에서가 훨씬 예쁘다. 나오면 그 색이 아니다. 내 생애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명옥 “하나하나 만지면서 촬영하고 등록한 유물이 전시실에 공개될 때 기쁘다. 보러온 이들이 감동받을 때, 고생했던 것도 생각나면서 보람 있다.”

이보현 “발굴 당시 이미 알 수 없을 정도로 해체됐던 유물을 오랜 시간을 들여 일일이 손으로 맞추며 호흡했던 시간, 원형을 찾아가는 시간을 내가 유물과 함께하는 것 아닌가. 이런 유물을 나만 보는 것보다는 역시 대중에게 공개할 때가 뿌듯하다.”

인터뷰 말미에 자연스레 거북선 이야기가 나왔다.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에 활용했던 거북선 선체가 발견된다면 한국 수중고고학은 또 한 번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양순석 연구관은 “나올 가능성이 높은 곳은 원균이 패배한 칠천량이다. 그러나 그 부근에 매립이 진행되며 해안선이 많이 바뀐 상황”이라고 전했다. 거북선을 찾자고 무작정 헤매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도 괜찮다. 바다에는 끝없는 비밀이 기다리고 있다.

목포해양유물전시관, 바닷속 보물 한가득


지난 4월 보물로 지정된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1976년 신안선 발굴 이래 여태까지 10만점 이상의 수중문화재가 물 밖으로 나왔다. 발굴된 침몰선은 14척이다. 이러한 ‘바닷속의 타임캡슐’을 만날 수 있는 해양유물전시관은 목포와 태안, 2곳에 있다. 6월 14일 이명옥 연구사와 함께 목포해양유물전시관을 둘러봤다.

가장 먼저 청자 매병이 반긴다. 2012년 보물로 지정된 ‘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이다. 충남 태안군 마도선에서 발견됐다. 이 청자의 가치를 높인 건 다름 아닌 목에 달려 있던 ‘죽찰’이다. 죽찰에는 “중방 도장교 오문부 댁에 참기름을 담은 준”을 보낸다고 기록돼 있었다. 이를 통해 매병의 용도와 고려시대 매병을 ‘준’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명옥 연구사가 2012년 이 매병의 지정신청을 맡았다. 그는 “형태가 거의 완벽하고 상태가 굉장히 좋은 유물이다.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 말~13세기 초의 양식을 보여준다. 형태적 안정성·예술성·역사성을 다 갖췄다는 점에서 수중문화재로선 첫 번째로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엔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가 보물로 지정됐다. 역시 태안선에서 두 점으로 발견됐다. 나머지 하나는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 있다. 보다 보면 약간 두꺼비처럼 생기기도 한 것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자보다 투박하고 귀엽다. 이 연구사는 “사자치고는 독특한 외형이다. 그렇지만 목에 달린 방울과 소용돌이 모양 갈기로 사자라는 걸 알 수 있다. 귀한 구슬을 앞발로 쥐고 있는 모양이 그 당시의 사자 공예품과 같다”고 말했다.

도자기를 비롯해 선원들이 사용한 바둑알 같은 생활용품을 따라가다 보면 드디어 신안선을 만난다.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의 하이라이트다. 신안선 선체를 복원해 미디어아트와 함께 전시한다. 실제 발굴된 출수품을 주변에 깔아놓았다. 신안선은 중국 원대 선박으로, 1323년 중국 칭위엔에서 출발해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고려 신안 앞바다에서 가라앉았다. 길이 30m, 무게 240t에 이른다. 도자기만도 2만5000여점이 발견됐다. 일부만 전시해 놨는데도 그릇 도매시장을 방불케 한다.

신안선에서 출수된 도자기는 중국산이 주를 이룬다. 다만 관리는 철저히 우리 몫이다. 향목과 약재로 쓰이는 자단목(로즈우드) 한조각 한조각에도 식별번호가 붙어 있다. 자단목은 선체 바닥에 실려 배의 무게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보존처리를 했기 때문에 가까이서 맡아봐도 향은 나지 않는다. 대신 육두구, 정향, 계피 같은 실제 향신료를 따로 마련해 관람객이 (도자기나 생활용품의) 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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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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