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서한성, 중경외시..'시험계급도'에 허우적대는 대한민국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노무현 전 대통령도 사법고시 출신이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는 다르다. 가난한 집안 출신의 고졸 학력으로, 인권 변호사와 현실 정치를 경험한 뒤 대통령이 됐다. 그런데 서울대 법대를 나와 고시를 보고 검사밖에 안 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또 강남 현대고 출신의 금수저가 법무부 장관이 됐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대표 사회학자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현 정부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관점대로라면,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나라를 운영할 '최고 적임자'보다 '최고 능력자'를 선발한 셈이다. 우리는 어쩌다 '시험선수'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게 됐을까.
김 교수는 최근 낸 책 <시험능력주의>(창비 펴냄)에서 "한국인들이 시험이라는 선별의 기제를 거친 각종 차별대우가 공정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시험을 볼 기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고, 개인이 노력한다면 그 기회를 활용해서 지위 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 즉 시험능력주의를 신앙처럼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인들에게 신앙이, 신흥종교가 됐다는 '시험능력주의'.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16일 김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능력주의는 입시나 고시 성적, 자격시험이 아니라 성적 '순위를 매기는 시험'이 학력이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라고 보는 능력주의다. 이것을 우리는 '시험능력주의'라 부를 수 있다.
시험이라는 제도는 어느 나라나 다 있지만, 한국의 시험은 독특하다. 좋은 지위를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시험은 탈락한 사람들을 승복하게 만드는 장치 역할을 한다. 이 장치로서의 시험이 학교를, 또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지금은 이 같은 '시험능력주의'가 완전히 내면화되어 있어 공기처럼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김 교수는 "'능력주의'는 한국에서만 유행하는 현상"은 아니라면서도 "'명문대 시험 합격=학력(學力)·학벌(學閥) → 능력 → 사회적 지위, 차별화된 보상 → 공정(=정의).' 이 공식에서 명문대 합격, 즉 학력이 곧 능력이고 그것이 사회적 지위를 가질 자격증이 된다"는 것을 한국인 대부분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유네스코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나라에서의 시험은 '사회 계층 이동'과 '더 많은 경제적 기회'를 의미한다며, 이를 '시험 문화(culture of testing)'라고 명명했다.(유네스코 방콕사무소 2018년 보고서 '시험 문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배움의 사회문화적 영향에 관하여'(The Culture of Testing: Sociocultural Impacts on Learning in Asia and the Pacific))
이에 따르면, "한국에서 시험은 개인의 삶의 질과 성공을 결정짓는 전통적이고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기능해 왔"으며 한국에는 다른 국가들과 구별되는 '교육열(education fever)'이 있다고 봤다. 교육열의 근원은 "계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 엘리트 계층에 진입하려는 욕망"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한국의 '시험 문화'는 엘리트 계층 '집입'이라는 버전1.0에서 엘리트 계층 '세습'이라는 버전2.0으로 진화했다. 이때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은 충분조건이자, 필요조건이다. "부유층이나 문화자본을 가진 고학력 전문직 부모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면 학력도 돈으로 살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명 '조국 사태'가 대표적이며, '강남 8학군' 출신의 장관 또한 예외가 아니다. 다만, 김 교수는 조국 전 장관 딸에 분노하던 명문대 학생들이 한동훈 장관 딸에게는 분노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조국 전 장관 같은 경우는 국내에서 성공한 전문직들, 교수-의사-변호사라는 네트워크 속에서 일종의 품앗이로 서로 아이들을 봐준 것이라면, 한동훈 장관의 경우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겨냥한 국제적 네트워크가 가동됐다.
국내 명문대 학생들 입장에서는 한 장관의 딸은 자신들과 같은 학벌 혹은 테두리 속 경쟁자가 아니라고 여긴 것 같다. 부당하고 부정의한 일이라고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일자리 문제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침묵한 것이다. 사실, 굉장히 이기적인 행동이다."
상위 1%에 속한 명문대 출신의 금수저라고 해도 다이아몬드수저의 부정의에 침묵하는 상황. 결국 분노는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표출된다. 김 교수는 책에서 "은수저 출신은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한탄하고 좌절하지만, 금수저에 대한 특혜를 비판하거나 그런 차별 질서가 왜 생겼는지 묻지 않은 채 동수저나 흙수저를 혐오한다"고 지적했다.
요즘 아이들은 10대 시절부터 시험 성적에 따른 자신의 계급을 자연스럽게 체화한다. "수능시험 점수는 모두 9등급으로 나뉘는데, 1등급에서 3등급까지 아이들은 치킨을 시켜 먹는 사람이 되고, 4등급에서 6등급까지는 치킨을 튀기는 사람이 되고, 나머지 아이들은 치킨을 배달하는 사람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2014년 경남대 주최 학술대회에서 언급된 청소년들의 유머)
"30대 초반의 아들과 딸이 있는데, 이야기해 보면 계급화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서한성(서강대·한양대·성균관대)-중경외시(중앙대·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라는 대학 서열에 따라 자신의 계급을 설정한다. '이 대학 출신의 이 정도 순위니까 이 선에서는 만족한다'라는 식이다. 다소 불만족스럽다고 해도 자신이 속한 계층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방식이다. 10대 시절 학교나 입시 성적으로 정해진 계급이 내면화되어 있다."
이처럼 '학력주의'와 '능력주의'는 한국의 정치사회 질서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험능력주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교육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지만, "'시험=공정', '추천과 특채=불공정'의 도식을 불식할 정도의 믿을 만한 시스템" 마련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입시제도 변경을 통해 개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단지 대학의 경쟁, 그러니까 상위권 대학 쏠림 현상을 완화시키는 장치를 마련할 수는 있다. 완화시킨다고 서열화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나는 '울퉁불퉁한 서열화'라고 표현하는데, '수직 서열화'가 아니라 '울퉁불퉁 서열화'를 통해 학생들이 특정 대학의 특정 학과로 몰리는 걸 분산시키는 것이다.
또 대학 입학을 통해 능력주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일처럼 졸업을 어렵게 만든다거나 학생들의 대학 간 이동은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단박에 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이렇게라도 변화를 시도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 교수는 책에서 문재인 정부의 교육 정책은 "한국 주류 보수의 시각을 대변"했다며 "학생들의 학력 성취의 중요 배경인 부모의 경제력이나 구조적인 불평등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은 기댈 구석이 있을까?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준 교육에 대한 인식은 '교육이 왜 필요해요? 교육은 산업 인력만 잘 양성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하는 박정희-전두환식 사고"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시험능력주의'라는 의제 자체가 입시 제도나 교육 제도의 변경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지배 체제의 문제다. 지배 체제에 얽혀 있는 문제들을 동시에 착수하지만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책은 한국의 사회개혁, 불평등 극복, 시험능력주의 극복을 위한 정책 제안서"라고 밝혔지만, 그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점은 분명하다. 시대적 과제가 된 '시험능력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배 체제의 변화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훼손된 공정이 아닌 정의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이 책에서 입시교육, 시험대비 교육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고 계속 비판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한국의 공교육은 모두 실패했는가'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한국 교육은 나름대로 성공했고 국가와 사회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성장을 가져온 일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야 교육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교육은 한국인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불러일으켰고, 사회의 역동성을 가져왔다. 이 글의 문제의식은 그러한 성공이 과도할 정도로 학부모의 사적 투자에 힘입은 것이었고, 사적 투자에 기반을 둔 시험능력주의가 학력을 매개로 한 입신출세주의를 강화했으며, 부모나 학생들을 너무 고통스럽게 했을뿐더러, 공공에 대한 책임감 없이 특권의식으로 가득 찬 엘리트의 타락과 부패를 가져왔고, 노동 천시를 지속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는 한국 교육이나 사회적 지배논리를 집약한 시험능력주의가 미래를 위한 큰 짐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시험능력주의> 362쪽)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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