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육지라면 [물에 관한 알쓸신잡]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오래 전 유행했던 대중가요 중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바다가 길을 막아 육지에 갈 수 없는 섬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노래로 섬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에 대한 원망이 살짝 담겨 있습니다.
섬마을 사람들에게 바다는 육지로 나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그들 삶의 터전이기도 한 애증의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다로 둘러싸인 땅의 범위를 넓혀서 한 나라로 확장하면 바다의 존재감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만일 우리나라 3면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가 ‘육지’라면 우리는 어떤 상황을 겪고 있을까요? 우선 수산물을 즐겨 먹는 우리의 식생활이 달라졌겠지요. 바다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은 모두 주변 국가에서 수입해야 하니 가격도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산물 사랑은 각별합니다. 수산물 소비량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세계 평균의 3배에 달합니다.
세계에서 수산물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섬나라로 수산물을 즐기는 일본이나 필리핀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틀렸습니다. 대한민국입니다. 우리나라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노르웨이와 일본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먹는 해산물은 오징어지만 생선류 외에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 패류, 해조류 등 바다에서 나는 것이면 가리지 않습니다.
술안주로 인기가 많은 골뱅이는 한국, 일본을 비롯한 몇 개 나라를 제외하고 다른 나라는 먹지 않는 해산물입니다. 세계 골뱅이의 최대 소비국은 단연 우리나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양만으로는 소비량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공급량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합니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골뱅이는 주로 영국과 불가리아에서 오는데 이 나라 사람들 역시 골뱅이를 먹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잡는 셈이죠.
바다가 없다면 여름휴가 계획은 더 힘들어지겠지요.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는 무조건 해외여행을 가야 하기 때문에 수영복과 함께 여권도 챙겨야 하고 경우에 따라 비행기 표도 구해야 할지 모릅니다.
다행히 3면에 바다를 끼고 있는 우리는 그런 고민이 필요 없습니다. 휴가지로 가는 도로가 막히기는 하지만 전국 어디서든 2~3시간 정도만 달리면 바다를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바다가 없으면 국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도 크지만 국가 차원에서 겪는 어려움은 치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 물동량의 90% 이상은 배를 이용한 해상 운송이 차지합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화물을 나를 수 있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지요. 자국에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항구가 없다는 것은 화물의 적절한 운송 수단이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다로 통하는 항구가 없으니 이웃 국가의 항구를 빌려 써야 하는데 항구 사용료와 육상 운송비를 더하면 제품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죠. 만일 항구를 가진 나라가 여러 가지 트집을 잡아 육로 이용을 통제하거나 항구 이용을 금지하면 무역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는 땅에 비유하면 도로와 맞닿는 부분이 없어 차가 드나들 수 없는 맹지와 마찬가지입니다.
전세계 200여개의 나라 중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는 40개가 넘습니다. 내륙국가는 작은 크기의 여러 나라가 한 대륙에 모여 있는 곳에 생기기 때문에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대륙에 많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유럽의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등도 내륙국가에 포함됩니다. 내륙국가 중에서 강을 통해 바다로 연결되는 나라는 그나마 상황이 좀 나은 편입니다.
스위스와 헝가리는 바다는 없지만 다뉴브 강을 통해 흑해로 연결됩니다. 이들 국가에게 다뉴브강은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죠.
내륙국가가 갖는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나라마다 항구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은 필사적이었고 이웃 나라와의 전쟁도 불사합니다. 바다를 갖기 위한 이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러시아의 항구를 찾기 위한 싸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추운 날씨로 바다가 자주 어는 탓에 항구 상황이 변변치 않은 러시아로서는 일 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부동항이 절실합니다.
러시아가 우세하게 전황을 이끌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 지방은 흑해로 이어지는 주요 항구인 마리우폴, 헤르손, 오데사가 있습니다. 이들 항구 도시 중 오데사를 제외한 2개는 이미 러시아가 장악했습니다.
남아있는 오데사마저 러시아가 점령해 우크라이나가 내륙국가가 된다면 전쟁이 끝나더라도 세계의 곡물 전쟁은 끝나지 않을 듯합니다. 우크라이나가 곡물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바다로 가는 육로를 열어줘야 할 테니 말입니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의 서러움으로 말하자면 남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볼리비아를 빠트릴 수 없습니다. 볼리비아는 한 때 바다를 가진 나라였지만 19세기에 이웃 나라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하는 바람에 태평양 연안을 빼앗겨 강제로 내륙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볼리비아는 바다로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무위로 끝나긴 했지만 국제사법재판소에 영토 회복을 위한 소송도 제기하고 언젠가 바다를 되찾을 날을 기다리며 아직도 해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바다가 없는 나라에 해군이 있다는 것이 마치 월남에는 없는 ‘월남 스키부대’처럼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볼리비아 해군’은 바다를 빼앗긴 나라의 깊은 설움과 억울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했던 인류 역사를 보면서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가 육지라면 우리는 어떤 상황을 겪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찔합니다.
싱싱한 회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뻔했고 올여름 바닷가 휴가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 말입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세계 10위권의 무역 강국도 바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이명철 (twom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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