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강국 목표, 양자기술 추격 나선 韓.. 美와 기술격차 4년
구글, 53큐비트 양자컴퓨터 공개
美 바짝 쫓는 中, 올해 17조원 투자
과기부, 946억 투입해 양자기술 생태계 조성
“앞으로 5년이 양자컴퓨터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지금 신속하게 기술 추격에 나서지 않으면 재도전의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양자기술에 대한 각국의 관심이 뜨겁다. 정부는 2030년까지 양자기술 4대 강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업과 협업에 나섰다. 양자기술이 무엇인지, 개발 경쟁을 선도하고 있는 국가는 어딘지, 국내외 기업 간 격차는 어느 정도인지 살펴본다.
◇ 양자기술이란?
양자는 물질이 갖는 에너지양의 최소 단위다. 여기서 말하는 물질이란, 원자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영역 속의 물질을 말한다. 원자의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지구 주위를 달이 공전하는 것처럼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렇게 더는 쪼갤 수 없는 구조의 빛의 알갱이를 양자라고 한다.
양자는 두 개가 함께 중첩된 상태를 보일 수 있다. 두 개가 떨어져 있을 때 서로 영향을 미치는 성질도 띤다. 이런 양자 고유의 특성은 ‘중첩’과 ‘얽힘’으로 불린다. 영화 ‘앤트맨’ 시리즈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이 시리즈는 주인공 스콧 랭(폴 러드 역)이 분신술을 하는 것처럼 동시에 여러 모양으로 존재하는 상태를 중첩으로, 그가 양자 영역에서 재닛 밴 다인(미셸 파이퍼 역)과 연결되는 것을 얽힘으로 표현했다.
양자기술은 이런 특성을 실생활에 접목하는 데 목적을 둔다. 여기서 등장한 개념이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센싱이다. 중첩과 얽힘을 활용해 연산, 통신, 측정을 하는 걸 각각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센싱이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도 산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건 양자컴퓨팅이다. 양자컴퓨팅이 가능한 컴퓨터를 양자컴퓨터라고 하는데, 이는 현존하는 슈퍼컴퓨터보다 처리 속도가 훨씬 빠르다. 기본 정보단위인 큐비트가 0 또는 1만 처리할 수 있는 비트와 달리 0과 1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상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가 해독하는 데 100만년이 걸릴 1024비트 암호를 10시간 안에 풀 수 있다. 다만 아직 연구·개발이 진행 중이어서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美·中, 국가 주도로 양자컴퓨터 개발 투자
미국은 일찌감치 양자컴퓨팅 시장 선점에 돌입했다. 지난 2009년 양자정보과학 연방비전 발표로 양자컴퓨터 개발 사업을 본격화한 데 이어 2018년엔 국가양자이니셔티브법을 제정하며 약 1조5000억원을 투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또 지난해 백악관 직속 국가양자조정실을 설치하고 올해 국가양자구상자문위원회 역할 강화도 주문했다. 지난 2020년 구성된 기존 위원회는 미 에너지부가 아닌 백악관에 직접 보고하게 됐다.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에 민간 기업도 나섰다. 그 결과, 구글은 2019년 53큐비트를 탑재한 양자컴퓨터를 공개하며 세계 최초로 ‘양자 우위’를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캐나다 디웨이브시스템스가 먼저 2048큐비트 양자컴퓨터를 내놓긴 했지만 극히 제한된 영역에만 활용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양자 우위란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넘어서는 단계를 일컫는 말이다. 구글은 2029년까지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170여개 회원사로 구성된 글로벌 협력체 ‘퀀텀(양자) 네트워크’를 이끄는 IBM은 지난해 127큐비트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IBM은 올해 하반기 433큐비트 프로세서를 선보이고 2025년까지 4000큐비트 이상을 탑재한 양자컴퓨터를 내놓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등 전통 정보기술(IT) 강자들도 대열에 합류한 상태다. MS는 총 8곳의 양자컴퓨팅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고, 인텔은 네덜란드 연구소인 큐텍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의 뒤는 중국이 바짝 쫓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7년 세계 최대 규모의 양자정보과학연구소를 착공한 데 이어 지난해 양자컴퓨팅을 7대 핵심기술로 지정했다. 올해까지 투자규모만 17조원에 달한다.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과학기술대(USTC)는 지난해 구글보다 진보된, 66큐비트를 탑재한 양자컴퓨터를 선보이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USTC는 2030년 500~1000큐비트급 범용 양자컴퓨터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이 지난해 3월 발간한 ‘양자정보통신 동향과 정보통신공사업 전망’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양자컴퓨팅 기술 격차는 약 4년이다. 이는 이동통신, 소프트웨어 등 10대 기술 분야 평균 격차보다 2배 이상 뒤떨어진 것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한국이 지난 10년 동안 출원한 양자컴퓨팅 기술 관련 특허 역시 615건으로, 미국(2223건), 중국(1978건), 유럽(1296건), 일본(665건)과 비교해 매우 적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9일 ‘양자컴퓨팅 연구인프라 구축’ 사업 시작을 알리고, 오는 2026년까지 총 49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주관기관인 표준과학연구원과 9개 산·학·연 기관은 우선 2024년 말까지 2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구축해 클라우드 서비스 시연을 시도하고, 2년 뒤인 2026년 말까지 5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할 계획이다. 해당 사업에는 삼성디스플레이, LG CNS, LG이노텍, LG전자, LG화학, 포스코, 현대기아차 등이 수요 기업으로 참여한다.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한국은 1982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 프로토콜(IP) 패킷 통신을 성공한 뒤 많은 산·학·연의 헌신적 노력으로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 강국으로 거듭났다”며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 한국 경제를 선도할 양자기술 강국의 기틀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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