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태양계 끝 소외된 행성 '천왕성'의 재조명
국립과학기술의학아카데미(NASEM)는 10년 주기로 ‘행성과학 10년 계획’ 보고서를 발표한다.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NASEM은 천왕성 탐사선의 우선순위를 가장 높은 등급으로 분류했다. 토성계를 방문했던 '카시니 하위헌스호'처럼 궤도선과 탐사정(프로브)으로 구성된 탐사선을 보내 수년간 천왕성을 관측하고, 그 대기로 직접 들어가 봐야 한다는 제안이다. 천왕성의 기원을 탐구하고 대기와 내부 구조를 관찰하기 위해, 대단히 독특한 자기권의 구조와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천왕성의 고리와 위성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태양계의 행성은 흔히 지구형(고체행성)과 목성형(거대가스행성)으로 나뉜다. 행성의 주요 구성 성분이 암석, 금속 등 비휘발성 물질로 구성된 고체행성과 액체 혹은 기체 수소, 헬륨 등으로 구성된 거대가스행성으로 나눈 것이다.
과거에 천왕성과 해왕성은 목성형 행성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탐사 결과 이들은 목성, 토성과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하기에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다.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멀어 대기 아래 깊은 곳에는 얼어붙은 메테인과 물, 암모니아가 있고, 행성 내부 가장 안쪽에는 암석과 얼음이 뒤섞여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천왕성과 해왕성도 서로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행성 전체를 놓고 볼 때 두 행성은 ‘거대얼음행성’이라는 세 번째 카테고리에 묶어 두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목성과 토성은 자세히 탐사한 적이 있으나 두 거대얼음행성은 아직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다. 둘 중 무엇을 먼저 탐사해 볼 만한가 하면, 그래도 조금 더 가깝고 조금 더 잘 알고 있는 천왕성일 것이다. 다른 행성의 중력을 잘 활용하면 천왕성에 궤도선을 보낼 수 있다.
이미 더 멀리 있는 명왕성에도 탐사선을 보냈는데, 그에 비하면 가까이에 있는 천왕성 탐사는 이제 쉽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명왕성 탐사선 뉴허라이즌스호는 명왕성 근처를 한 차례 지나갔을 따름이다. 물론 그 한 번의 근접 비행(플라이바이)으로도 우리는 귀중한 자료를 많이 얻었다. 이번 보고서에서 나온 제안은 천왕성과 그 위성들 주위에 수년간 머무르며 천왕성을 집중적으로 탐사하자는 것이다.
○ 천왕성 방문, 보이저 2호가 처음이자 마지막
천왕성은 태양으로부터 28억 8000km 떨어져있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평균 거리를 의미하는 천문단위(AU)로 환산하면 약 19.2 AU에 해당하는 거리다. 천왕성 바로 안쪽을 도는 토성이 태양으로부터 약 9.5 AU 거리에 있음을 생각하면, 천왕성의 발견으로 당시 인류가 인지하고 있던 태양계의 너비가 두 배 이상 넓어진 셈이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천왕성을 방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발사된 1957년을 우주 탐사의 원년이라 한다면 우리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는 반세기를 훌쩍 넘은 지 오래다. 그런데도 지금껏 천왕성에 가까이 간 탐사선은 보이저 2호뿐이다.
1977년 지구를 떠난 보이저 2호는 9년여의 항해 끝에 천왕성을 만났다. 보이저 2호가 보내온 사진 속 천왕성은 연한 청록색의 민무늬 공처럼 보였다. 보이저 2호는 지구에서의 관측으로는 분별하지 못했던 두 개의 고리를 추가로 발견했다.
보이저 2호의 관측으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천왕성 자기권의 형태가 아주 특이하고 불규칙하다는 것이다. 행성의 자기장은 주로 행성의 자전과 관련돼 있어서 자기장의 회전축은 자전축에 평행한 경향이 있지만, 천왕성의 자기장은 자전축으로부터 약 59도 기울어져 있었다. 이런 이유로 천왕성에서는 오로라가 극 지역이 아니라 중위도 지역에서 발생한다. 이후 허블우주망원경 관측으로 중위도에 발생한 오로라가 확인됐다.
천왕성은 자전축이 거의 누워 있어 공전궤도면 상에서 구르다시피 하는, 태양계에서 가장 독특한 궤도 운동을 하는 행성이다. 공전축을 기준으로 자전축의 기울기는 98도나 된다. 여기에 더해 자기장의 형태까지 고려하면 과거 천왕성에 다양한 충돌이 여러 차례 있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심하게 긁힌 흔적이 가득한 위성들의 모습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지구상의 망원경으로는 여러 위성의 존재까지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보이저 관측으로 가까이에서 본 위성들, 특히 미란다는 추상화에 비유될 정도로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과거 그곳에선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처음 생겨난 이래 오늘날의 천왕성계를 이루기까지 이 거대한 얼음 행성과 그 위성들에는 어떤 역사가 흘러갔을까.
○ 시속 900km 강풍, 영하 224°C 얼음 세계
보이저 2호는 천왕성 주위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8만 1500km 거리까지 접근했다가 다시 서서히 멀어져 간 것이 전부다. 이후 보이저 2호는 항해를 계속해 해왕성의 근접 사진을 찍는 데까지 성공했다. 지금은 태양계의 끝자락인 태양권계면을 넘어 더 먼 우주로 나아가고 있다. 천왕성을 방문한 것은 보이저 2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본 천왕성 근접 사진은 모두 보이저 2호의 작품이다.
얼핏 보면 아무런 무늬도 없는 듯하지만, 천왕성의 대기는 보기보다 역동적이다. 보이저 2호의 사진도 자세히 보면 구름과 어두운 반점 등이 있다. 보이저 관측 이후 과학자들은 지구상에 건설된 대형 망원경과 허블우주망원경, 찬드라 우주망원경을 통해 간헐적으로나마 더 다양한 파장에서 천왕성을 관찰해왔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다른 행성들처럼 위도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때로는 시속 900km에 이르는 강풍이 분다. 대기 온도가 최저 영하 224°C(49K)에 달할 만큼 낮아 가히 얼음 세계라고 부를 만하다. 최근의 관측에서는 다른 행성에 비해 유독 넓은 영역에서 X선을 방출한다는 것이 발견됐다. 때로는 태양에서 플레어가 터지듯 폭발적인 형태로 관측돼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
○ 2040년대 중반, 거대얼음행성으로 탐사선 보내자
천왕성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태양계 너머 다른 별 주위를 도는 외계행성을 5000여 개도 넘게 발견했다. 그중 고체행성이 35%, 거대기체행성이 30%, 천왕성, 해왕성과 같은 거대얼음행성이 35% 정도의 비율을 이룬다. 고체행성과 거대기체행성은 그간 심층적 탐사가 거듭 이뤄져 왔다. 이제 그동안 소외됐던 거대얼음행성으로 우리의 탐사 영역을 확장할 차례다. 천왕성 탐사는 태양계 내의 거대얼음행성뿐 아니라, 태양계 밖 더 넓은 우주를 이해하는 데 도움될 것이다.
이번 ‘행성과학 10년 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2031년에서 2032년 무렵에 탐사선을 발사할 경우 목성 중력의 도움을 받아 효율적으로 천왕성에 가 닿을 수 있다. 예상되는 항해 소요 시간은 13년 정도. 보고서의 권고대로 탐사가 진행된다면 2040년대 중반에 궤도선과 탐사정이 천왕성 궤도에 도착한다. 20여 년 뒤 신비로운 얼음 세계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도약을 준비할 시간이다.
※필자소개
심채경. 행성과학자. 태양계에 있는 목성, 토성, 타이탄과 같이 대기가 있는 천체와 달, 수성, 소행성과 같이 대기가 없는 천체를 두루 연구한다. 때로는 망원경으로 멀리서, 때로는 탐사선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천체를 살피고자 노력한다. 지은 책으로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옮긴 책으로 ‘우아한 우주’ 등이 있다.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 선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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