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스팀 너머 울상 짓는 소년.. 아빠는 반짝이 옷을 걸었네
모피방|전석순 지음|민음사|305쪽|1만3000원
“숫자에도 온기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소설집 ‘모피방’의 표제작 속 화자는 어린 시절 세탁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꼼꼼히 적어둔 자신의 몸 수치에서 온기를 느꼈다고 말한다. 화자는 특히 세탁소의 작업 과정을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연결 짓는다. 그가 세탁소 골방에서 바라본 아버지는 늘 스팀다리미로 얼굴의 주름을 펴듯 옷의 주름을 펴던 사람이었다.
반면 아버지는 일렁이는 다리미 스팀 연기 너머로 아들의 얼굴이 울상 짓고 있다고 느낀다. 세탁소 옷걸이에 골방에서 바라본 아들의 시선이 닿는 구간만큼은 모빌처럼 반짝이는 옷들을 걸어놓은 이유였다. 거기에는 모빌을 살 돈이 없는 가난함에 대한 미안함도 묻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아버지의 속내를 화자는 세탁소를 철거하고, 그 비용으로 아내와 살게 될 ‘모피방’을 꾸미며 알게 된다. 모피방이란 내부 인테리어가 전혀 안 갖춰져 있어 세입자가 마음대로 꾸미게 한 방이다. 모피방은 좁디좁은 세탁소와 달리 넓고, 많은 게 달랐지만, 인테리어가 완성돼 갈수록 화자는 그곳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진하게 느끼게 된다.
2011년 장편 ‘철수 사용 설명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는 8개 소설을 엮어 쓰는 동안 “얼마간 빚진 마음이 깃들었다”고 했다. “소설이 아니었다면 돌보지 않았을 내면, 귀 기울이지 않았을 목소리, 무심코 지나쳤을 장면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소설 속 인물들은 비(전망대, 회전의자, 때아닌 꽃), 연기(달걀), 스팀(모피방) 등 너머의 것들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보면 그간 보지 못했지만, 사실은 소중했던 주변 단면을 더듬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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