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정부·국회, 물가 관리 의지 있나
대통령도, 정부 경제 수장도 연일 물가 대책을 강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의 가용 대책을 총동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윤 대통령이 물가 등 민생 대책을 강조한 것은 이달 들어 벌써 네 번째다. 16일에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 재정·통화·금융당국 수장이 한자리에 모여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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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머리 맞댄 경제수장들
국회는 자중지란에 민생 외면
」
거시경제금융회의가 열린 건 4개월 만이고, 새 정부 들어서는 처음이다. 회의에서 이들은 “물가 안정이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며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 운용과 함께 공급 측면의 원가 부담 경감, 기대인플레이션 확산 방지 등 다각적 대응 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먹거리, 외식 물가를 비롯해 생활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기름값은 치솟고 있는데, 그저 말뿐이다. 대통령도, 경제수장도 지금 상황이 ‘엄중’하다면서도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
그나마 내놓은 대책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게 수입 돼지고기 할당관세 면제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 말부터 가공용으로 쓰이는 냉동 돼지고기 정육 3만6000t과 냉장 삼겹살·목살 등 구이용 정육 1만4000t 등 5만t에 대해 할당관세를 면제한다. 그런데 지난해 전체 돼지고기 수입량 33만t 가운데 미국산이 12만t으로 가장 많았고, 스페인(6만7000t)·네덜란드(3만t)산이 그다음이었다. 미국·유럽연합(EU) 등지는 우리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돼지고기에 대한 할당관세가 없다.
할당관세가 붙는 건 캐나다·멕시코·브라질산 돼지고기 정도인데, 이들 나라에서 수입하는 돼지고기는 전체 수입 물량의 10%도 안 된다. 캐나다와는 FTA를 체결했지만 돼지고기 부위별로 8.6~9.6%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멕시코와 브라질은 22.5~25%의 관세율을 적용한다. 할당관세 면제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란 얘기다. 정부가 고려 중인 유류세 추가 인하도 마찬가지다. 유류세 인하 폭을 현재 30%에서 37%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도 인하 폭은 올해 휘발유·경유 가격 인상 폭의 10% 정도인 1L당 57원 정도다. 그러다 보니 정부도 체감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의 물가 상승세가 전쟁이나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같은 공급 측 요인이 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손을 놓고 있는 걸 국민들은 얼른 납득하기 어렵다. 경제 수장들은 윤 정부 출범 한 달이 지나서야 머리를 맞댔고, 여야는 자중지란에 빠져 허우적대다 최근에야 민생 현안을 챙기겠다고 나섰다. 여당은 이제 와서 할당관세 면제·감면 품목 확대 등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도 민생 현안을 선점하겠다며 최근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21대 국회 전반기 임기를 마친 후 20여 일이 지났는데 후반기 원 구성도 못 하고 있다. 물가 상승과 물류난 등 민생이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도 개점휴업인 셈이다.
“물가를 못 잡는 정권은 버림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3월 31일 국민의힘 초선 의원 7명과 점심을 하면서 한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세계사에서 물가와의 전쟁에서 패한 정권이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적은 없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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