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영조의 부인과 어머니 무덤 이야기
2022. 6. 17. 22:46

신록의 푸르름이 절정을 이루는 6월은 무엇보다 왕릉 답사에 좋은 달이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왕릉 주변에는 조선시대부터 금표(禁標)가 설치돼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고, 벌목도 엄격히 금지됐다. 지금도 왕릉 주변 수목이 울창하고 쾌적한 것은 이곳이 조선시대부터 엄격히 관리됐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올해 조선의 주요 왕릉을 크게 5개 권역으로 나눠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답사 기행을 기획했다. 왕실 사랑이 주제인 ‘영조의 길’, 그리움을 공감할 수 있는 ‘단종의 길’, 정조와 사도세자에게 초점을 맞춘 ‘정조의 길’, 영원함을 주제로 한 ‘왕의 숲길’,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왕과 황제의 길’ 등이다. 지난 13일 첫 번째 행사인 영조의 길이 진행되었고, 필자는 해설자로 참여하여 홍릉(弘陵)과 소령원(昭寧園)을 답사하였다.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홍릉은 고양시 서오릉 경역 안에 있다. 1757년 왕비가 사망하자, 영조는 아버지 숙종의 무덤이 조성된 명릉(明陵) 근처에 왕비 무덤을 만들고 옆자리를 비워두었다. 자신도 죽으면 부인 곁에 묻히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영조의 뜻은 실천되지 못하였다. 1759년 영조는 66세 때 15세 신부 정순왕후를 계비로 맞이하였는데, 영조의 무덤이 현재의 동구릉 자리에 조성된 것은 정순왕후를 의식한 정조의 결정 때문이었다. 영조의 원릉(元陵) 옆에는 영조 사후 29년 만에 정순왕후가 묻혔다. 남편이 오기만 기다렸던 정성왕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지금도 홍릉 옆은 빈자리로 남아 있다. 현재의 파주시 광탄면에 조성된 소령원은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를 모신 무덤이다. 숙빈 최씨는 숙종의 후궁이었기 때문에 무덤에 ‘능’이라는 칭호 대신 ‘원’을 쓴 것이다. 영조는 생전에 소령원을 자주 찾고 이곳을 성역화했다. 1725년에는 소령원 앞에 어머니의 신도비(神道碑)까지 세워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했다. 서오릉의 홍릉, 동구릉의 원릉, 그리고 소령원에서 영조의 흔적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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