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우리의 일부는 딸이거나 아버지라서

2022. 6. 1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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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살림을 단출하게 줄인 아버지는 혼자 유럽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딸이 자신의 전철을 밟는 것을 두려워한 어머니에게 "결혼 때문에 낯선 곳으로 이사 와서 살림만 하고 살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란 루마는 지금 그런 삶을 살아내는 중이며 아버지를 새집으로 초대했다.

이 단편소설을 처음 읽었던 10여 년 전에는 딸인 루마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읽었고 아버지를 판단했고 결말 부분에서 어쩌면 이 아버지에게 섭섭함을 느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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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딸, 지금은 아버지의 마음
'객관적'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

줌파 라히리, <길들지 않은 땅> (‘그저 좋은 사람’에 수록,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살림을 단출하게 줄인 아버지는 혼자 유럽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딸이 자신의 전철을 밟는 것을 두려워한 어머니에게 “결혼 때문에 낯선 곳으로 이사 와서 살림만 하고 살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란 루마는 지금 그런 삶을 살아내는 중이며 아버지를 새집으로 초대했다. <길들지 않은 땅>은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두 부녀가 함께 보내는 일주일을, 세밀한 관찰의 눈으로 보여준다.
조경란 소설가
소설에서 시점(point of view)은 그 이야기를 누구의 입장에서 보여줄까?라는 질문 끝에 결정하게 된다. 가족이어서 아직 사랑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생활을 갖고 있으며 거기에 익숙해져 버린 아버지와 딸. 게다가 딸은 아버지와 단둘이 일주일을 보낸 적이 없었다. 이 간단하지 않은 부녀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작가 줌파 라히리는 시점을 초점화(focalization)시켜서 각각 딸과 아버지의 시점으로 나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럴 때 독자는, 소설의 주요 인물인 두 사람은 모르는 사실이나 감정을 먼저 알게 되고 거기서 파생되는 어떤 안타까움과 진실 때문에 작품에 깊이 참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때론 딸의 입장이 되거나 혹은 아버지에게 공감하면서 읽게 되거나.

어머니의 죽음 이후 루마는 혼자 남은 아버지를 모시고 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동시에 아버지를 책임져야 할까 봐 두려워했으며 아버지가 자기 가족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남편이 출장 간 집에서 도와주는 사람 없이 큰아이를 돌보고 둘째를 임신 중이며 변호사 일을 그만두며 지내는 딸은 “이렇게 사는 게 얼마나 일이 많을지, 얼마나 고립된 건지” 이제야 느끼고 있었다. 그런 딸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아버지는 혼자가 되자 뜻하지 않은 홀가분함을 느끼며 지낸다. 아내와 문제가 있지는 않았지만 바라는 것이 많았던 아내는 “열심히 일해서 가져다준 삶이 감사하지 않았다고” 느끼게 했으니까.

딸의 새집에서 아버지는 버려두다시피 한 뒤뜰에 아내가 좋아했던 수국과 관목들과 토마토를 심고 어린 손자를 위해 풀장을 설치하곤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딸은 아버지와 이렇게 지내는 게 “얼마나 제대로” 된 일인지 깨닫곤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한다. 아버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단편소설을 처음 읽었던 10여 년 전에는 딸인 루마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읽었고 아버지를 판단했고 결말 부분에서 어쩌면 이 아버지에게 섭섭함을 느꼈던 것도 같다. ‘아버지’라는 역할의 불충분함 때문에. 그사이에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고 가족이나 부모에 대해 가졌던 마음에도 무언가가 끼어들었던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 편에 서서 이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조용히 놀라게 된 걸 보면.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딸’과는 다른, ‘아버지’의 짐을 이해하게 되어서일까.

루마의 제안에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 집을 떠난다. “자신의 일부는 언제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그 제안을 뿌리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건 달랐다. 즐거운 경험이긴 했지만 일주일을 지내보니 그 사실이 더 확실해졌다. 그는 다시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복잡함과 불화, 서로에게 가하는 요구, 그 에너지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내 아버지를 한 개인으로, 내 어머니를 한 여성으로, 그렇게 객관적으로 보고 대해야 하는 순간은 아직도 어렵고 어쩌면 영원히 그럴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일부는 언제나 딸일 테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그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저 좋은 사람’. 서로 길들 수 없는 땅에서 살아가야 할 이 부녀의 이야기가 실린 책의 제목이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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