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석양의 화가' 윤중식

기자 2022. 6. 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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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을 대하고 앉으면, 눈에 떠오르는 것은 하루해가 어둠에 끊기기 직전 새들의 동작이다. 어둡기 전에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야 한다는 새들의 강박관념, 그 작고 따스한 날개를 파닥거리며 나는 몸짓에서 황혼녘의 인생이 현신(現身)된다. 창공을 향해 힘껏 나는 새의 모습에서, 황혼이 꺼지기 전 새로운 삶의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희망과 몸부림을 읽어낸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자세로 나는 그림을 그린다.' 해가 질 무렵의 풍경을 즐겨서 그린 '석양(夕陽)의 화가' 윤중식(1913∼2012) 화백이 남긴 글의 한 대목이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가을 석양에 붉게 물드는 벌판에 수시로 찾아가서 몇 시간씩 보냈다. 벼 낟가리 위에 누워 풀벌레 소리 들으며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불타는 노을과 함께 해가 진다. 석양 속에서는 모든 게 신비롭다. 그것이 내 감수성과 그리움의 원천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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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화폭을 대하고 앉으면, 눈에 떠오르는 것은 하루해가 어둠에 끊기기 직전 새들의 동작이다. 어둡기 전에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야 한다는 새들의 강박관념, 그 작고 따스한 날개를 파닥거리며 나는 몸짓에서 황혼녘의 인생이 현신(現身)된다. 창공을 향해 힘껏 나는 새의 모습에서, 황혼이 꺼지기 전 새로운 삶의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희망과 몸부림을 읽어낸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자세로 나는 그림을 그린다.’ 해가 질 무렵의 풍경을 즐겨서 그린 ‘석양(夕陽)의 화가’ 윤중식(1913∼2012) 화백이 남긴 글의 한 대목이다. 그의 글 중엔 이런 내용도 있다. ‘붉은 태양이 서쪽 산으로 기울어질 때면, 석양은 찬란한 빛과 신비의 세계로 물들고, 다양한 변화에 가슴마저 울렁거리게 된다. 너무나 순간적인 빛과 색을 바라보는 찰나, 강한 빛과 색은 사라지고, 안식과 침묵의 고요한 적막(寂寞)으로 변해 버린다.’

평양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어린 시절에 보고 느낀 풍경·정서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가을 석양에 붉게 물드는 벌판에 수시로 찾아가서 몇 시간씩 보냈다. 벼 낟가리 위에 누워 풀벌레 소리 들으며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불타는 노을과 함께 해가 진다. 석양 속에서는 모든 게 신비롭다. 그것이 내 감수성과 그리움의 원천이다”라고 했다.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을 계기로, 그는 연극배우·연출가·지휘자 등의 꿈을 화가의 길로 바꿔 일본 유학을 갔다. 도쿄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야수파 스승에게 공부한 그는 1942년 선전에 작품 ‘석양’으로도 입선했다. 귀국 후, 평북 선천의 보성여학교 미술 교사 재직 중에 6·25전쟁을 만나 엄청난 비극을 겪었다. 1·4 후퇴 때 1남 2녀를 데리고 피란하던 도중에 부인도, 여섯 살이던 큰딸도 생이별을 했다. 작은딸은 굶어 죽었다.

그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1963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50년 동안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 500여 점을 유족이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한 배경이다. 그 미술관에서, 그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회향(懷鄕)’ 주제의 추모전이 지난 3월 30일 시작됐다. 오는 7월 3일까지 계속된다. 그의 작품들을 두고 ‘그림으로 표현한 장엄한 서사시(敍事詩)’라고 하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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