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서해공무원 피살은 '文 대북 저자세'가 부른 참극 판단"
■ 허민의 정치카페 - ‘서해 공무원 피살’ 정보공개 왜
‘귀순 주민 북송 사건’과 함께 ‘북한 퍼스트’ 정책이 만든 국민 희생 관점 견지… 단계적·실체적 진상 규명 방침
윤 정부, 문 정권과 북 사이에 어떤 ‘거래’ 오갔는지도 밝혀야 할 과제…‘안보 적폐청산’ 신호탄 될 수도
해양경찰청이 16일 오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기록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사건은 발생 1년 9개월 만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2020년 서해 소연평도 어업지도선에 타고 있던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실종 후 북한군 총격에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진 사건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줄곧 사건을 분석해온 대통령실의 기본 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피살 공무원이 자진 월북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저자세와 직무유기가 국민 희생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당장은 안보적인 문제와 법적 제약 때문에 제한된 일부 데이터와 자료만 공개되지만, 중요한 건 윤 정부의 진실 규명 의지다. 대통령실은 당시 문 대통령에 대한 보고가 언제 어떤 내용으로 이뤄졌고, 청와대와 군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정황적으로 해석해 내고 단계를 밟아 진실에 가깝게 사건 흐름을 재구성해 국민에 보고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정보 공개는 필연적으로 보고의 정점에 있던 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 퍼스트’의 비극
2020년 9월 22일 오후, 서해에서 표류 중이던 ‘국민’에 대한 상황 보고를 처음 청와대가 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그는 북한군의 총격을 받았고 기름 부은 불길에 휩싸여 소훼됐다. 대한민국 공무원이자 두 아이의 가장이며 딸바보였던 40대 국민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국민의 생명을 수호할 헌법적 책무가 있는 그 누구도 그를 살리지 못했다. 군이 북측의 표류 공무원 접촉을 인지한 후 만행까지 약 6시간, 대통령 첫 서면보고 뒤로도 3시간가량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 누구의 ‘국민 살리기’도 없었다. 사건 발생 2주 전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생명 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고 친서를 보냈었다. 사건 발생 이틀 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개최됐지만 ‘사람이 먼저’ 구호를 부르짖던 그는 참석하지 않았고, 아카펠라 공연장을 찾았다.
문 정권 인사들은 국민의 억울한 죽음조차 당파적으로 해석했다. 북의 야만적 살인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덮어야 할 이슈였고, 국민의 죽음은 월북자의 말로(末路)로 포장됐다. 김정은의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담긴 북한 통일전선부 통지문이 공개되자 유시민은 “김정은=계몽군주”라고 떠벌렸다. 김어준은 북의 만행을 “일종의 (코로나) 방역”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북한 규탄 결의문’ 대신 ‘종전선언·관광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2019년 11월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을 강제 북송했을 때도 그랬다. 법학자들에 따르면 귀순한 북한 주민은 헌법상 국민이다. 문 정권은 ‘국민이 된 북한 어민’의 눈을 가리고 포승에 묶어 북송했다. 김정은 정권에 의해 충분히 예상되는 살인 등 가혹 행위를 방조했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문 정권의 유전자
두 개 사건 모두 문 정권의 ‘북한 퍼스트’ 정책이 낳은 비극이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직후엔 한반도 종전선언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는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있었다. 그는 국민이 살해당한 지 4시간 뒤 “남과 북은 생명공동체”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귀순 주민 강제 북송 사건은 문 정권이 그달 말 부산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을 참석시키려고 진력하던 때에 일어났다.
현 대통령실의 인사는 전화통화에서 “북한 눈치 보기와 대북 저자세로 국민 생명까지 나 몰라라 하는 건 문 정권의 유전자”라면서 “문 정권이 김정은과 남북관계를 의식해 국민 희생에 외면하거나 침묵했다면 그건 직무유기”라며 “사실상 ‘인신 공양’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문 정권 통일부 장관을 지냈던 김연철도 지난 2008년 금강산에서 북한군 총에 숨진 ‘박왕자 씨 피살 사건’에 대해 자신의 책 ‘만약에 한국사’(2011)에서 “어차피 겪어야 할 통과의례”라고 쓴 일이 있다.
윤 대통령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진상 규명을 공개 언급한 것은 대선 캠페인 때부터였다. 대선 후보 시절 그는 수차례에 걸쳐 “사건의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북한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고인의 명예를 되찾아 드리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시절인 지난 5월 2일 피살 공무원 유가족과 만나 “정권이 바뀌면 다른 건 몰라도 사건 당시 보고 기록부터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진상 규명의 출발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확인할 자료원은 크게 세 곳, 청와대·해경·군(합참) 등인데 무작정 공개할 수는 없다. 청와대 자료는 문재인 퇴임 직전 최장 15년 기한의 비공개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됐다. 합참 영상자료는 한·미 정보자산이 드러나는 문제여서 안보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로는 해경 자료를 공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16일 해경의 자료 공개는 그런 점에서 윤 정부가 진상 규명 실천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해석된다. 안보실은 앞으로 접근 가능한 각종 기록과 증언 등을 토대로 분석과 유추, 정황적 해석을 통해 사건의 내용과 시간대별 흐름, 대통령과 청와대·정부·군의 대응을 재구성하면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겠다는 계획이다.
안보실의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해경 자료 공개가 진실 규명을 위한 첫 단계라면, 다음 단계로는 유족 등이 헌법소원으로 대통령기록물 공개 판결을 이끌어내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문 정권과 김정은 정권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도 들여다볼 것”이라고 했다. 국가 존립의 원천이자 존재 이유인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한 정권의 잘못을 낱낱이 밝혀내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앞서 희생 공무원의 유족은 문 정권의 청와대 안보실과 해경 등을 상대로 정보 공개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1월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이에 안보실과 해경이 항소했는데, 정권교체 후 윤 정부가 항소를 취하하고 가능한 자료를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통령실은 “소송을 이어가며 시간을 끌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진실, 적폐, 청산
이번 정보 공개 결정은 한 국민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해원을 넘어, 김정은 정권의 야만성을 드러내고 지난 정권의 과오를 밝히려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정보 공개가 문 정권 시절 저질러진 ‘안보 적폐청산’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세줄 요약
‘북한 퍼스트’의 비극 : 윤석열 정부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저자세와 직무유기가 국민 희생을 만들어냈다’는 강한 의혹을 가짐. ‘북한 퍼스트’ 정책이 부른 비극이라고 보는 관점.
文정권의 유전자 : 북한 눈치 보기와 대북 저자세는 문재인 정권에 배태된 유전자임. 문재인 정권이 김정은과 남북관계를 의식해 국민 희생에 외면·침묵했다면 그건 직무유기이자 ‘인신 공양’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옴.
진상 규명의 출발 : 대통령실은 해경 자료 공개를 시작으로 진상 규명을 위한 단계적 노력을 기울일 방침. 이는 보고의 정점에 있던 文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 정권 ‘안보 적폐청산’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음.
■ 용어 설명
‘김정은 계몽군주’ 발언은 유시민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발생 3일 후 토론회에서 한 말. 김정은이 “미안하다”고 한 것과 관련, “김정은의 리더십 스타일이 이전과는 다르다”며 이렇게 평가.
‘귀순 북한주민 강제 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 2명을 판문점에서 강제 북송한 것. 헌법, 북한이탈주민보호법, 유엔 국제고문방지협약 등 위반 지적을 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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